• 번호 : 53454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7/09/21
  • 조회수 : 353

딱,알맞게 살아가는 법ㅡ영성작가 안셀름그륀


중용,균형잡힌 삶,분별력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인에게 너무나 익히 들은 삶의 가르침입니다.

이 책에서도 1,500년 전통의 보수적이고 금욕적으로 
알고있는 가톨릭 수도원의 수도자가 이 쾌쾌묵은 동양
사상집에 수록된 철학을  우리의 삶을 통해 실천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성경구절에도  많은 중용의 사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삶의 자세를 가르쳤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이 책을 소개하며 조선일보에 칼럼을 쓴 종교기자도
엄격한 유럽수도회에서 수도를 할때도 중용이 
필요하다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까지 베네딕도 수도회가 이어져온
지혜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는 독일 베네딕도 수도회 출신으로 신학,철학,
경영학까지 수학하며 대 수도원 재정담당일을 
맡았습니다.

따라서 종교수행인이지만 세상 세속적인 삶도 
고루 볼수 있는 균형잡힌 안목으로
이 시대의 가장 현철한 영성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셀름그륀 수사  저서의 이 책 제목처럼 
현대인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어쩌면 
가장 쉬운  딱 알맞게 살아가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시대에 무소유로 깊은 울림을 주었던 법정처럼, 
현실적으로  속세인의 삶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의 포인트를  요약해 봅니다.

ㅡㅡㅡ

인간의 욕망은  경제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그 욕망을 완전히 몰아낼수 없는
가운데 욕망의 지배를 받지않고 적당한 자극제가
되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평범한 것에 만족을 못하는  많은사람들이 성공과 
출세라는  미명으로 휴식이 없는 가운데 지쳐버리고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나 비하등도 결국 내적인
압박이 되기에 스스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야 합니다.

그리스어로 시간에 대한 2개의 언어,
즉 시간의  개념을   쫏기듯 시간에 끌려다니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라는 고요한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 고요한 시간에도 무언가를  채우려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대로 비어있는 내적인 평온함, 
아무 생각이 없는 뇌의 휴식을 하며 얻는 
시간인  카이로스를 선택하야 합니다.

정신없이 사는 크로노스보다 카이로스 그것이 
시간을 가장 잘 쓰는 것입니다.
 
하물며 1500년전 규율이 정해진  수도원의
수사들에게 조차도, 지금 시대에서는  휴식이 
일체 없다면, 끝없는 묵상과 기도에 지친 심신이 
되어 버립니다.

 또  수도원생활도  능력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와 노동, 개인생활과 공동생활의 적절한
조화와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은 의식을 거행할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의식은 영혼이 거처하는 튼튼한 집 입니다.
유익한 의식은 조상 대대로 연결시켜드립니다.

조상의 모습에서  삶의 도전에 대처할 힘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잊을때 우울해지기에 의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만날때 폭풍과 가뭄을 
견뎌내는 나무처럼 삶의 도전을 극복할수 있게됩니다.

가톨릭 미사가 주는 거룩함은 마음의 평정심을 줍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는것. 그리스어로 아케디아로  
지금 이순간에 머물지 못함이라는  말로,
아케디아를 치료하려면 자신안에 머무는일 ,정주하며
규칙적 인 생활을 통해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아들이기위한 고행,공명심 때문에 하는 
고행과는 구별하야 합니다.

극단적인 금욕도 악에서 온 것으로 중용을 기준삼아
하느님에게서 온 관대한 금욕과 구별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본 모습을 찾는 것이 본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본질을 추구하라,
이 세상이 지나가면 우연은
사라지고 본질만 남으리니 ‥"
라는 어느 시인의 말대로
본질 이야말로 자기 삶의 원초적 의미 입니다.

인생은 궁극적으로 본질과 폭풍처럼 밀려오는 경박한
생각과 전투를 하는 것이니 죽음을 가까이 경험한 
사람들은사소한 일을 떠나 삶의 본질적 문제에 관심을 
가집니다.

숲속을 산책하는것, 새가 지저귀고 벌레가  웅웅
거리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나무,꽃.흙냄내가 나고
숲속 공기에 녹아있는 것을 느끼고,

나무와 교감하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기에 갈망하는 
것들이 모두 숲안에 있기에  숲에 있는것 그시간만 
이라도  살아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주의를 기울이며 산다는 것은 자신의 안이나 주변에 
있는 모든 모순된것을 통합하는 일 입니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현재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 입니다.

자신안에 모든것에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온전히 믿을때,
제 안에 있는 두려움 ,시기, 질투,무절제, 슬픔을
들여다  보고 그  감정을 두루지나 영혼의 밑바닥에 
이릅니다.

이것이 본 모습이고 이것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습니다.

이는 비로소 자신을 알고 분수도 알고 남과  비교하거나
내적인 공허감을 돈,명예,존경, 인정,성공같은 외적인
것으로 채워놓으려는 노력을 멈추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속에 있는 것 입니다

한편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고 그 충족하는일을 
자신에게 허락하는 한편, 또 욕구충족을 
포기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포기할줄 모르는 사람은
강한 자아가 형성 될수 가 없다고 합니다.
포기도 할줄 알아야 즐길수도 있는 것 입니다.

그럴때 남 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존재와  가진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억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물 입니다

거룩한 것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으로 부터 온 
것 입니다.

사람은 쓰라린 상처를 통해 우리의 마음속 깊은곳을
들여다 보고, 영혼의 밑바닥의 값비싼 진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은 장점,결점 .건강,상처 아름다움과 추함등
상반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도 자기분수를 모르는 
것 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분수를 모르고 자신을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분별없이 정의만 내세우는것은  무차별이라는
늪에 빠집니다.

20년 은수자 생활끝에 암자를 떠나는 안토니오 
성자를  보며 아타나시오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순수했다.
불쾌해하거나  기뻐하지도 않았으며 웃음이나 
수줍음을 떨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말은  그의 마음이 균형이 잡힌것을 뜻하는 
것 입니다.

균형잡힌 리듬이 있는 음악을 들을때  마음이 
아름다워지며 치유되듯히 , 균형잡힌 감정과 사고가 
지극히 아름다운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중용으로 이끔니다.

불필요한 물건이 무엇인가? 를 항상 생각하야 합니다.

수많은 불필요한 정보홍수를 이루는 인터넷,털레비전,
스마트폰등이 그렇게 필요 한 것인지  자문해보야 합니다.

중용만이  자유로움을 준다며 (이 적절한 정도)가 
우리의 삶을 절제있게 만들어 줍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창립당시 당시 폭풍과 같이 불어
닥쳤던 무절제와 민족의 대이동으로 로마문화의 
척도가  뒤 바뀌는혼돈속에 오로지 중용과 질서로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수도회를 창시한 것입니다.

중용은 자신의 분수,분별력, 리듬같은 삶의 속도. 
이 3박자를 갖추는것.

중용은 도덕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건강하고 즐겁고 아름답게 살자는 권고입니다.

중용은  즐거움과 금욕, 일과 휴식, 대화와 침묵,
공동생활과 개인생활 사이의 균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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