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4097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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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신부의 일기 처럼 ‥

오래 전 한국에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여의도  미사를 참여하고 대전으로 오는 길 이었다. 

엄청난 인파로 정체된 전세버스 차창가에  먼 시골에서 
온듯한 소년들과 장애인 소년들 열댓명이 길에 앉아 
 전세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젊고 잘 생긴 신부님이 
그들을 챙기며 같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모두가 새벽부터 장거리를 오며 교황님을 멀리서라도 
직접 뵌 충만감이 가득한 미소진 얼굴들 이었다.

검게 그을린 그 시골성당 신부님 의 모습이 30 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그것은 당시 갓 결혼을 하여 가정을  차리고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연배의  성직자를 보며,  삶에 대한 가치를
적재하는  그릇이  다른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 이다.

그 즈음  대흥동 성당에서 직업여성 재활센터를 
운영 하는등  평신자 분중 보기드물게 훌륭한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인복 숙대 교수의 강론을 들었다.

이교수는 자신의  어머니는 어둠속의 여성들을 
햇볕을 받게 한 대모 였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진절머리나게  사치스러웠던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한 후 다른 인생을 걸었고 ,그 어머니의 
장례식때  수 맗은  직업 여성들의  긴 행렬이 끝없이
줄을  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교수는 6.25 전란때 소녀였던 자신을 산속에서 
잠깐이나마 보호 해준 젊은 신학생 병사의  일화를 
소개하며 사제는 초인 이라는 말을  강론중  하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절제하는  신앙심을  
범인들은  가질 수가 없다는 것 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그런 말을 한 것 이었다.

6.25  동란 바로 전날 , 서울대 재학생때 배웅을 
해주었던  군입대자 학우들이 그 길로 전쟁터에서 
전사를 하였다는 기막혔던  당시, 
눈이 벌판에 쌓인 전선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던 
추기경님의  선택은 종교로의 귀의였다.

그런 분이 선택한 천주교계에서 한 임의 단체가 
추기경님을 비판했던 소식에  분노했던  기억이 있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남수단에서의 성자 같은 삶이,
대부뷴 신자들의 오욕에 찌든 생활에  
감동적인 충격을 주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마음이 아프고 심란하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진영논리로 해석한다면, 
사건의 본질 못지 않게  심각한  후유증을  가질 것 이다.
피해 당사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지금  
그 어떤 말이 필요있을까 싶다.
그 이상의 언사는 비겁함과 교만으로  세상에 비쳐
질수 있다.
그것은 자칫 천주교계를 엄청난 분열과 영원히 
회생불능 상태로 빠지게 만들 수 가 있을 것 이다.

이번 일을  보며 가물 거리는  30여년 전 여의도 에서 
본 검게 그을린  당시 시골 성당  젊은 신부님이 
떠 올랐다.
당시  아름다운 장면 속  신부님은 지금 내 나이가
되었을 것 이다.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신부의 일기에서,
시골성당의 젊은 신부는 신학과  동창생 집인  
누추한  다락방에서  말기암으로 토혈하며  환속한 
동기신부에게  임종성사를  부탁한다.

시골 본당에서 갓잖은 신자들에게 세상 물정 모른다고
은근히 무시를 당한 시골신부는 그 짧은 신부 생활 
동안  낡은  신부복을 입고  생을 마감한다.

그  상황에서 마지막 으로 전한 말은,
아무려면 어떠리, 이 모든 것은 신의  은총이네,  였다.

순수한 영성에서 나온  그 시골 신부의  순수함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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