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4592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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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한반도 평화 기원미사 교구장 주교님 강론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기념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인 오늘은 6월 25일입니다. 6.2.5.라는 세 숫자에 대한 의미는 여기 계신 모든 분에게 각각 다르게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전쟁 중에 힘든 시간과 아픔을 경험하신 분들에게 6‧25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다시금 헤집는 아픔의 숫자이겠지요. 이곳에 계시는 많은 분에게는 직‧간접적인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숫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젊은이에게는 직접적인 자극이 전혀 전해지지 않고, 오직 타인의 기억을 의미하는 숫자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이 우리에게 증명하는 바는 한국 사회가 지극히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체감되는 변화폭의 정점은 최근 1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사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년 6월을 되돌아봅시다. 오늘 우리가 마음속에 기대하거나 걱정하는 일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습니까? 그 누가 2018년 6월 25일에 한반도가 ‘CVID’, ‘평화협정’ 등의 단어를 가능성과 함께, 현재에 꿈꿀 수 있다고 상상조차 했겠습니까? 실로, 대단히 경이롭고 심지어, 두려울 수도 있는 변화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빌어주신(공식석상에서 8차례나) 교황님의 기도와 수많은 신자와 전 세계 지성인의 관심과 노력을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기적과도 같은 지금의 현실은 한국 교회와 한민족이 차분하게 우리의 과제를 식별하고, 그 실행을 준비하는 마음가짐과 정신을 요청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한국교회가 정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1995년에 명칭이 변경되기 이전까지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로 기념해 왔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 날의 명칭을 변경하고, ‘통일’ 개념을 ‘화해와 일치’의 개념으로 전환한 데는 많은 고민과 식별이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에 관한 궁극적인 목표를 일방적으로 제안하고, 그 실현을 주도하려는 자세에 대한 반성이 근저에 작용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기도가 교회의 결정을 이끌었습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 31-32)

    화해의 첫 출발점은 현재 직면한 갈등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개방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끌어안는 자세입니다. 일치는 서로의 다름을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는 이러한 화해로부터 시작됩니다. 일치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오늘, 이 땅’에 꽃피우는 한민족 공동 노력의 모든 수단과 방법에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 가치는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에 기반한, 진정한 공존과 번영 및 공동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정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개념에는 오랜 긴장과 갈등 및 증오를 극복하고, 진정한 평화와 정의로 향하는 길을 제안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평화협정,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등 생소한 단어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불안한 분들도 있고, 기쁨과 기대를 가지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로 남북분단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 가치관과 꿈, 판단의 기준 등에 심오하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 계신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후의 가난과 전쟁 재발의 공포는 경제발전과 사회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부각시켰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역사의 진실을 밝히거나, 부당한 처우나 폭력에 저항하거나, 야만적인 탐욕을 충족하기 위한 불법과 부정을 폭로하려는 수많은 노력에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나와 남을 필요 이상 가르고 경계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문화, 서러워도 갑질을 견디어내는 분위기, 양심과 도덕을 지키기보다 흐트러진 윤리적 분위기에 적당히 편승하려는 숱한 자세들이 분단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의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보며, 한 민족과 교회가 세계 평화와 정의를 외치고 앞당기는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기적적인 성장과 발전으로 변모시킨 민족,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평화의 물꼬를 기도하고 준비했던 교회가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합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직면하는 역사적 장면은 한국교회의 과제를 드러냅니다. 한국 교회가 깨어 일어나 밝고 건강한 정신으로, 무엇이 이러한 어두움을 생산했는지를 식별하고, 역사와 민족이 걸어갈 올바른 길을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피할 수 없는 절대 과제인 ‘민족의 복음화’도 이러한 선상에서 고민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복음화의 십자가는 말씀을 듣고, 큰 소리로 선포하여 입교인의 수를 늘리는 일에만 국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복음화는 한국 교회 스스로가 그리스도교 신앙이 참 진리이며 구원임을 증거 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이는 교회 자신이 과거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냉전논리에 의해 왜곡된 의식과 문화를 치유한 건강한 모습을 증거 할 때 가능해집니다.

    만약 누군가 교회를 향해, 우리 앞의 미래를 어떻게 명명할지 묻는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순명하는 마음을 안고, ‘화해와 일치’라고 답해야 합니다. 이 답안은 비단 한반도의 갈등과 위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포기하고, ‘포용과 화합’의 가치를 ‘배척과 지배’라는 야만적인 가치로 되돌리는 오늘날의 흐름에도 이 답은 적용되어야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기 주머니만을 가득 채우려는 욕심이 모든 고통의 근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품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누고 실천하며, 새로운 하늘과 땅을 지금 여기에 증거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통해 용서와 일치로부터 발해지는 기적이 증거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교회가 바쳐온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제 평화와 사랑의 하느님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진 화해와 일치의 십자가를 지고, 전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향하는 골고타 언덕으로 올라갑시다. 전쟁으로 돌처럼 굳은 마음을 살처럼 부드럽게 치유하며(에제 36,26 참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시는 기도와 소망을 식별하는 가운데, 민족과 세계의 복음화를 준비합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