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1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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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말씀

창조의 말씀

 

초대 교회의 교부들로부터 교회는 성경을 연구하여 올바른 신학과 신앙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의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올바른 신앙 교리를 체계화하여 한편으로 교회가 갈 길을 밝히면서 다른 한편으로 잘못된 이단 교리들을 극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교회가 다져온 이러한 신학적인 기초 안에서 결국 말씀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될 때 그 몫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어떻게 구원의 역사에서 활동하셨는지 자주 들여다보고, 또 오늘 우리가 어떻게 그 말씀과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 익혀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약속의 말씀(창세 12,1-3)이 이집트 탈출과 광야 40년 여정 그리고 가나안 정복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쓰라린 유배와 귀환의 역사 역시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경고하고 예고하셨던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역사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며, 역사의 시작인 창조 역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에 의한 창조’를 고백하는 창세기 1장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세상 창조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로 시작하여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는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긴 역사를 살면서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 체험하고 반성하면서 결국 모든 것이 주님 말씀대로 이루지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이 고백한 신앙이고 신학입니다.

세상 창조 처음부터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당신 뜻에 따라 이끌어 가신다고 신앙고백을 한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 또한 창조의 역사입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구원의 역사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 곧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의 나라 땅에서 유배의 설움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그리고 유배에서 귀환하는 이 역사를 창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이사 45,8)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이루어 가심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그리고 구약의 긴 역사가 지나고 때가 차자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사람이 되어 오시어 구원의 은총과 진리를 펼치십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3.14)

이제 말씀은 단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시고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완성될 때 역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창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이처럼 성경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죄인을 벌하시되 구원으로 이끄시고 결국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우신 뜻대로 세상을 완성해주시는 모든 과정을 창조라는 주제로 표현합니다. ‘창조’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유보된 단어입니다. 사람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만, 창조는 오직 하느님만이 하십니다. 창조는 이 세상에 생명을 내어주시고 그 생명을 이끌어 가시고 완성해주시는 하느님 고유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세리와 창녀를 친구로 맞아주시며 그들이 사랑받는 온전한 삶을 회복하도록 해 주신 일도 그들에게 새 삶을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아픈 이의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죽은 이를 살려주시어 그들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시면서, 그를 통해 그 사람 안에 하느님 나라를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는 속죄의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떳떳한 시민이 되도록 우리의 천상적 생명을 재창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이렇게 우리의 죽을 생명을 새 생명으로 다시 창조해 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도 우리 가운데 새 생명을 창조하는 일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사랑하려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셔야 합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며 우리를 통해 활동하신다는 확신이 생기면, 우리는 성전 문 곁에서 구걸하는 이에게 베드로가 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사도 3,6-8)

 

말씀을 우리 안에 모시는 데에 말씀에 대한 깊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영양분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감사한 마음으로 꼭꼭 씹어 먹는 음식이 우리의 육신적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해 주듯,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대하고 음식처럼 규칙적으로 자주 대하면 말씀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인 친교가 형성됩니다. 이 때 성경의 글자는 ‘말씀’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영적 생명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이 때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는 신비가 이루어집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십니다.”(요한 17,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