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그 여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야훼 하느님께서 꾸며주신 에덴동산은 네 줄기 강이 갈라지는 비옥한 땅으로 하느님께서는 그곳에 온갖 맛좋은 과일나무가 자라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 땅에는 금과 보석도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사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뱀이 유혹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욕심을 갖지 않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우리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식별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에 대한 최종판단과 지배력을 말합니다. 이것은 오직 선하신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하느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복음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이에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 뿐이시다.”(마태 19,17)라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창세기의 ‘선과 악을 안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 혹은 집단이 다른 사람들 위에서 선악의 판단자가 되려고 할 때 폭력이 발생합니다. 역사적으로 집단적인 학살이나 독재정권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관계가 생기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주변 상황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이러한 유혹에 쉽게 흔들립니다.
뱀으로 상징되는 악마는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먹으면 죽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짓말로 만드는 도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말을 즉시 받아들이든 아니든 일단 관심을 갖게 되면 그들이 그동안 기꺼이 순종하던 그들 마음속의 하느님의 말씀이 상처를 입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뱀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처럼 된다.’는 말은 참으로 달콤한 말 같지만, 뒤집어 보면 이제 더 이상 하느님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는 무서운 말입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듣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쳐다보니 맛있어 보이고 정말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느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의 땅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본래 당신의 모습대로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창조하신 인간이 그렇게 영원히 멸망하도록 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삶에서 악마의 힘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실 약속을 해 주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이 그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악마의 세력을 멸망시킬 인물 곧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말씀을 원복음(元福音 proto-evangelium)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오랜 뒤 복음을 통해 선포될 구원의 역사를 이렇게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뱀의 후손이 에덴동산에서처럼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할 악마의 세력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최종적이고 종말론적으로 이 세력을 꺾을 메시아입니다.
이 말씀 안에 하느님께서 한 ‘여자’를 언급하시는데, 이 여자 역시 메시아와 같이 뱀에게 대적할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이 여인의 후손이 메시아라면 성경의 구원 역사 안에서 마리아 이외에 다른 어떤 여성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전승은 이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여인 곧 마리아가 악마에 대적하는 인물로서 구세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선언된다는 점입니다. 마리아가 어떤 역할을 할지 그것은 역사가 진행되면서 하느님께서 정하시고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창조된 인간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벗어날 때 생명의 땅에서 멀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계명으로만 생각할 때 그것은 짐으로 또 제약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생명의 길을 그 안에서 발견하면 그 길은 진정한 자유의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늘 물질적인 안락함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으로 시작하여 영으로 맺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필요하지만 결국 내려놓는 법을 배우도록 받은 선물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자존심, 자아실현의 욕구도 물질적인 영역입니다. 이것들을 내려놓기까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마태 7,1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간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