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6-07 02:15:54
  • 조회 : 826

"선교는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1)" 「복음의 기쁨」을 안고 세상으로(4)

계시된 모든 진리는 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복음의 핵심 곧,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더 직접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고 한 것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 또한 그 고유의 ‘위계’를 지닌다고 가르친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교를 핵심으로 하는 사목은 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강요하려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은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라고, 그리고 다른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나와 다른 이들의 공동 선익을 추구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특정한 이념적 선택에 바탕을 둔 교리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복음의 향기’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며 단호히 강조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 사랑의 초대가 희미해질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교황님은 우리가 복음을 살아가고 선포할 때 구체적인 역사 즉 언어와 상황의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신앙의 유산과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서로 별개의 것입니다.” 즉, 각 시대에 맞는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표현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찾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들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어떤 관습들은 오랜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고 또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러한 것들을 재고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교회가 나중에 추가한 규범들이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앙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호함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 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로 우리가 전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복음 선포자의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격려하십니다. 사실 복음 선포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면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삶을 회피한다면, 그의 말이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