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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룡동성당 성인유해 안치식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은 2011년 4월 24일(일) 도룡동성당(주임: 권일성 신부)에서 부활대축일 미사 봉헌과 미사 중 본당 대성당인 ‘한빛당’ 제대에 안치될 성인 유해의 안치식을 하셨다. 
제대에 안치된 성인의 유해는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와 성 한재권 요셉 성인의 것으로 지난 4월 16일 천호성지 인근에 위치한 호남교회사 연구소(소장: 김진소 신부)로부터 인수받은 것이다.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일명 ‘계식’으로 불리우며, 충청도 임천 출신으로 임천에서 천주교를 알아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박해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다가 병인박해 때에는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고 있었다. 한 때 고을의 원을 지내기도 하여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이 강직해서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까지 평판이 좋았다. 1866년 12월 초 사람을 시켜 박해에 대한 전주감영의 동태를 살피러 보냈으나 그 소식을 듣기도 전에 12월 5일 대성동과 성지동을 급습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한원서 등과 체포되어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로 순교했다. 순교하기 전 정문호는 옥중에서 항상 기도로서 순교를 예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순교를 기뻐했다.

성 한재권 요셉 성인은 충청도 진잠에서 태어나 부모의 착한 모범을 따라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또 진잠지방의 회장으로 활동했다. 박해로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무 직책없이 교회일에 충실했다. 1866년 12월 5일 한재권은 전라감사의 명으로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손선지, 정문호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친구를 통해 석방 교섭을 벌이는 한편 옥에까지 찾아와 배교할 것을 간청했으나 한재권은 “아버님, 그 말씀은 따를 수 없습니다.”하고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31세로 순교했다.

이 두 성인의 유해를 한빛당 제대에 안치한 도룡동 성당은 미사 후 신자들이 모여 국수잔치를 벌이며 순교자들의 모범을 본받아 삶으로 신앙을 증거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