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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환 타데오 신부 장례미사(3)

8월 13일(토) 오후 노환으로 선종한 故 김영환(타데오, 원로사목자) 신부의 장례미사가 8월 16일(화) 오전 10시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주례로 대전교구 사제단, 수도자, 교우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헌됐다.

교구장 주교닝은 "김 신부님은 교구역사와 함께하셨으며 교구장직무대리, 교구 총대리를 지냈고. 늘 자상하시면서도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셨다"며 "신자들에게는 인자하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품에 안아 주셨던 분"이라고 김영환 신부를 추모했다.

1925년 충남 서산 태생인 김 신부는 가톨릭대를 거쳐 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사제품을 받았다. 주교좌 대흥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금사리ㆍ규암ㆍ온양ㆍ대흥동 본당에서 주임으로 사목했고, 1975∼84년 교구 부교구장(현 총대리), 1984년 2월부터 10개월간 교구장 직무대행을 지냈다.

고인은 1955∼66년 규암본당 초대 주임 재임 시절엔 해마다 여름이면 범람하는 금강 탓에 어렵게 지은 농사를 수해로 망치는 것을 보고 미국 가톨릭구제회(CRS)를 통해 양곡을 지원받아 주민들과 함께 장비도 손수레도 없어 삽으로 퍼 날라, 2년 4개월간에 걸쳐 3.5㎞에 이르는 왕진제방을 쌓았고, 왕진평야 247만 9339㎡(75만여 평)를 전국적 규모 곡창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이어 대전 삼성동ㆍ공주 중동 주임을 끝으로 1998년 원로사목자로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2003년엔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2013년엔 사제수품 60주년 회경축 축하행사를 교구 사제들과 함께하는 기쁨도 누렸다.
 
김영환 신부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청소년보호치료시설인 효광원에 쏟은 열정적 사목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970년대 초, 당시 도경찰국(현 지방경찰청)의 권유로 ‘넝마주이’로 불리던 아이들을 데려다가 1972년 대전 재건원을 세워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1973년 효광원으로 개칭한 뒤로도 아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은퇴 뒤엔 아예 효광원 지도신부로 취임, 여생을 청소년 선도 사목에 바쳤다.

김영환 신부는 16일(화)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장례미사 후 대전가톨릭대학교 내에 위치한 성직자 묘지인 하늘묘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