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02-26 00:00:00

2007년 부활절 메시지

2007년 부활절 메시지

 

예수님과 순교자와 함께 부활하는 공동체

 

 

친애하는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 긴 여정을 동행했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여러분의 가정과 일상 곳곳에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특별히 순교자의 선혈 위에 세워진 대전교구 설정 60주년을 한 해 앞두고 맞이하는 금년 부활절의 기쁨은 여느 해보다 더욱 값진 것입니다.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도 환갑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지난 60년간 이 땅에 태어나 무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었던 주변의 보살핌과 배려를 돌아보고, 남은 삶은 베풀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또 다른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60년을 되돌아보며 부활 안에 거듭나는 대전교구의 기쁨도 이와 같습니다. 한국천주교회와 대전교구의 지난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좋으신 하느님의 이끄심과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신앙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1. 성사인 교회 안에 내려진 신앙의 은총


신앙 안에 거하는 우리가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은총이며 생명입니다.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부활하셨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 신앙은 그 자체로 거저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값지고 고귀한 은총은 교회를 통한 초대에 응답하고 성사의 은총 가운데 성장하면서 무르익게 됩니다. 이때의 교회는 건물이나 성직자들만의 모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은총을 받은 신앙인 개개인이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성사이자 교회입니다. 교회는 이렇듯 하느님 은총을 세상에 드러내는 성사입니다. 이를 통해 7성사와 교회공동체 성원의 삶 안에서 살아계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2. 성사 중의 성사, 한국 천주교회


특별히 한국 천주교회는 교회 역사상 유례없는 은총을 드러내는 성사성을 지닙니다. 선교사를 통해 전해진 신앙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순교선열의 영혼에 직접 새겨주신 신앙의 열매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기적, 죽음과 부활을 직접 체험하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할 때 이는 참으로 놀라운 하느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께서는 모진 고문과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보거나 만져보지 못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입으로 선교하기 보다는 변화된 삶의 자세로 신앙의 불모지를 옥토로 바꾸고, 노비를 친형제처럼 대하는 정의로운 사랑을 실천하였으며, 배교와 배신으로 목숨을 구하기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위하며 신앙을 증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용기나 열정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의 사랑, 곧 세상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려는 하느님 당신의 순교와 은총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3.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 대전교구 설정 60주년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이자 우리 지역인 충청도 내포지방에 뿌리내린 신앙의 꽃은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한 증거로 이 땅에 성장했고, 이제 우리 후손들의 삶에서 더욱 알찬 열매를 맺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에 은혜로운 대전교구 설정 60주년을 되돌아보며 저는 더욱 뜻 깊은 은총의 시간으로 채워가기 위해 ‘순교신앙으로 선교하는 해’를 선포하였고, 여러분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여 행하여라’는 주제로 ‘순교신앙을 기억하고 선교하기’, ‘성경말씀을 기억하고 생활하기’,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고 나누기’를 실천하여 부활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를 우리 교구에 꽃피우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는 시대는 초기교회나 순교선열들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역사적 예수나 가톨릭교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등록된 그리스도교 신자수도 적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교에 등록한 신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않습니다. 신앙의 초대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배부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세계는 은총을 거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전쟁으로 울부짖으며 무수한 어린이가 폭력과 기아, 그리고 질병에 무참히 죽어갑니다. 양극화가 더욱 가속되는 가운데 우리는 내 것을 나누어 주기보다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만을 모색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대하기보다 누가 자신을 낮춰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합니다. 불의에 맞서고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의 이익만을 쫓으며, 사회와 이웃의 질병과 아픔은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오늘 이 순간 내가 내리는 판단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거나 사회의 정의가 흔들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짙은 어둠이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4. ‘기억하여 행하여라’


이 자리에서 우리는 순교선열들의 순교정신과 하느님의 초대 그리고 성사인 교회를 기억합시다. 교회 자체인 신앙인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사에 초대받았습니다. 어둠 가운데 당신을 태워 구원의 빛을 주시려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증거하는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순교의 정신으로 불의와 부조리, 유혹에 맞서며 정의와 평화의 물꼬를 여는 역할에 초대받았습니다. 경쟁보다 상생을, 갈등보다 평화를, 잘남보다는 사람됨을 선택하는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우리 삶의 한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그 심장박동을 느끼며 그 길을 따라, 그분의 손을 잡고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귀한 자녀의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이런 은총의 초대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혼자의 힘으로 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신앙이 성장한다면 하느님의 은총을 더 깊이 체험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탄생과 삶,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는 은총을 구해야 합니다. 공동체 성원들 간의 활발한 나눔과 실천을 통해 깊숙이 감추어진 신앙의 씨앗을 싹틔우고 공명시켜 더 큰 울림을 만들어갑시다. 나를 변화시킴으로써 이를 보는 여러 공동체원들의 삶을 변화시키시려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합시다. 대전교구의 뿌리요 한국교회의 뿌리인 순교성지를 방문하고,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며 그분들께 허락되었던 용기와 열정을 청하는 시간을 마련합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는 삶은 교회를 통해서,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를 기억하여 행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성경 안에서 찾으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룩하신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순교자들의 삶 안에서 기억하고, 그 삶을 실천하는 가운데 2008년 교구설정 60주년을 준비해 나갑시다. 이 시대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청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내포 공동체의 신앙이 더욱 열정적인 모습으로 오늘 다시 부활하게 노력합시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부활이 참된 자유와 기쁨, 위로의 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천주강생 이천 칠년 사월 팔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