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02-26 00:00:00

2008년 사목교서

2008년 대전교구 사목지표

 

“은혜로운 대전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이하며”

-기억하고 행하여라-

 

 

사랑하는 평신도․수도자․사제 여러분,

 

한국 천주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우리 대전교구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았습니다. 1948년 5월 8일 대전 지목구 설정으로 시작된 교구 설정 60년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에 우리 함께 감사드립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간 우리는 60주년을 준비하면서 “순교 신앙으로 선교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순교정신을 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특별히 지난 2년은 하느님 백성 모두가 60주년을 은총의 해로 만들어주실 것과 내적 쇄신을 다짐하며 한마음으로 기도해 왔습니다. 더불어 도보 성지 순례를 비롯해 여러 행사를 통해 실제로 보고 느끼며 순교정신을 체험했습니다. 순교는 논리나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시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현시대를 이끌어주시려는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희망과 은총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우리 신앙선조들의 생활을 묵상하게 됩니다.

 

 

1. 우리의 자랑스런 모범인 교우촌 공동체

 

박해를 피해 형성된 한국 천주교회 초기 교우촌은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서로 사랑하는 성삼위의 관계, 곧 친교의 공동체였습니다. 양반과 상민이라는 두꺼운 계급의 벽을 넘어 하느님 안에서 모든 이가 한 형제요 자매로 살았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모두가 부족하였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기꺼이 나누었고, 더 어려운 이들을 함께 돕는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때문에 박해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 누구도 굶어 죽는 이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여줬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생활(사도 2,42-47 참조)을 우리 교우촌에서도 현실로 살아가며 박해를 가하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진리를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신 공동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신앙을 보존하기 위하여 산골 깊은 곳으로 피신하여 복음을 사는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의 삶의 모습을 우리는 소공동체를 통하여 오늘 날에도 다시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 홀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순례하는 공동체, 순례하는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같은 지역 또는 직장에서 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나누면서 함께 더불어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살고 작은 “소공동체”를 이루면서 이웃에게 신앙을 증거함은 물론이고 이웃과 함께 작은 “가정 교회”, “지역 교회”, “직장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한편 우리는 지금 신앙 때문에 생명을 잃을 위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박해를 당하는 일도 없습니다.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너도나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온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뭔가 부족함과 많은 상실감을 동시에 체험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실업난에, 집 문제와 자녀교육은 삶을 짓누르고 부의 양극화는 큰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노후의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모든 바탕에는 물질(돈)이 있는데,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소중한 생명과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정신적 가치의 실종과 윤리적 불감증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고 어둡게 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참 행복과 참 기쁨으로 안내하기보다 우리를 점점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갑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도를 지키며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일입니다. 이는 자기만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를 위해 불편함을 선택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바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살았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덕목입니다. 그분들은 인정하는 이가 없어도 참 생명과 진리를 위해 기꺼이 나누고 희생하였습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용기의 원천은 바로 성체성사였습니다.  

 

 

2.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성체성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위대한 신비, 최고의 신비는 성체성사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과 선조들을 시공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사랑의 신비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 13,1) 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땅의 먼지와 오물로 더렵혀진, 무척 초라한 우리의 발을 씻기 위해 무릎까지 꿇으셨습니다. 그 발은 깨진 조각과 가시덤불로 상처를 입고 더러워진 발이었습니다. 그분은 성체성사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며 마음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그분이 보여주신 극진한 사랑을 기억하여 이 땅에서 실천할 특권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체성사를 살아가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이웃과 나누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60주년을 맞이하는 교구의 모든 하느님 백성들에게 ‘한 끼 100원 운동’을 펼칠 것을 제안합니다! 곧 예수님을 초대하고,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돕기 위해 매 끼니를 먹을 때마다 100원씩을 모으자는 운동입니다. 이는 이웃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이렇게 우리의 정성이 모아지면 교구의 사회복지 시설들을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모든 복지시설에게 등불 같은 빛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한 끼 100원 운동’이 우리 교구의 자랑스런 운동으로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4-16).

 

 

3. ‘바오로의 해’를 열정적으로 살기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전교구의 복음화율이 낮은 것을 말씀드리며 60주년을 맞는 올해까지 단계적으로 10%에 다다를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노력을 함께 할 것을 제안했었습니다. 쉬는 신자와 새 신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말고 적어도 한 사람의 이웃에게 복음 선포를 하자고 호소해 왔습니다. 새로운 신앙과 성숙한 신앙의 발전을 위해 살아있는 교육장이라 할 수 있는 성지와 순교자들을 찾아가자고 제시했었습니다. 여러 공동체에서 좋은 결실을 맺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많은 이웃들이 순교신앙을 배우고 따뜻한 친교의 교회공동체를 체험하며 서로가 한 마음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력 없이 활기를 잃은 공동체를 볼 때면 마음이 저리고 복음화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교구 설정 60주년이 교황님께서 발표하신 ‘바오로의 해’와 겹치게 됨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선 바오로 사도의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고자 2008년 6월 28일부터 2009년 6월 29일까지를 ‘바오로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시 문화가 달랐던 이방인들을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 열정적인 선교의 불꽃을 태웠던 이방인의 사도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보편 세계에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 사도의 덕택이기에, 바오로 사도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바오로 사도께서 쓰신 서간들을 읽고 쓰고 묵상하고 특별히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활에 옮기도록 합시다. 바오로 사도께서 지니셨던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던 열정을 본받도록 합시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복음 선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2코린 5,14 참조), 복음 선포를 가장 중요한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는 대전 교구의 모든 형제 자매와 공동체는 바오로 사도를 묵상하며 열정적으로 살아 ‘복음화율 10%’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길 다시 호소합니다! 

 

 

사랑하는 평신도 여러분,

 

교구 하느님 백성 모두가 뜻 깊은 올해를 더욱 알차게 보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도보성지순례를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순교신앙을 기억하여 우리 삶의 자리에서 생활화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구 각 성지를 중심으로 2008년 2월 23일부터 8회에 걸쳐 순차적으로 실시될 도보 성지순례의 여정과 8차례의 일일 문화 피정에 적어도 한 번의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를 마무리하는 성체성사의 거행, 곧 감사미사를 10월 중에 봉헌할 예정입니다. 함께 해 주시길 청합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로 모시고 살았던 자랑스러운 교우촌 공동체를 기억하여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해 봅시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제․수도자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성삼위 친교의 삶이 이 세상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하느님께 대한 사랑,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 동료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우린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한 60주년을 맞아 실시하는 여정들에 신부님과 수도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외적 행사에 불과할 뿐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지혜로 가득한 “누구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웃에게 줄 수 없다”(Nemo dat quod non habet!)는 격언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순교자들을 닮은 모습으로 60주년의 여정을 함께 은총 안에서 기도하며 만들어 갑시다! 우리가 “먼저, 함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41항). 감사합니다.

 

 

                                                                      천주강생 2007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