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08-15 00:00:00

2015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하늘로 들어 올려짐을 기념하는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동시에 한민족의 기쁜 축제일인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광복절과 함께 대축일을 맞이하며 폐허의 땅에서 전쟁의 상처로 울부짖던 우리 민족과 역사를 향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에 깊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세계 최빈국의 상황에서 전 국민이 단합하고 땀 흘려 희생하며 한민족의 우수성을 한강의 기적으로 꽃피우기까지 성모님과 순교성인들의 기도가 늘 함께 하였음을 확신합니다.

특별히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2015년 성모 승천 대축일은 기적처럼 이뤄진 교황님의 방한 1주년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매우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행사를 마칠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으로 함께 해주신 대전 교구 모든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황님의 방한 이후 1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교황님의 놀라운 겸손과 섬김, 용기 있는 실천과 따끔한 지적들을 마음에 담고 하나씩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간의 축적된 죄의 모습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는 듯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탐욕스러운 불나방처럼 성장과 성공만을 쫓아온 우리 삶의 죄를 드러내고, 아직도 제 가슴을 치며 통탄하거나 절박한 마음으로 회심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불신과 불만, 타인에 대한 분노와 자신과 민족에 대한 좌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개인의 내면과 가족, 공동체, 사회 그리고 국가의 곳곳에 드리워진 오늘입니다. 섬김과 나눔으로 사랑과 정의를 증거하고 희망의 불꽃으로 세상을 밝히는 교회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여전히 세상과 같은 모습으로 성공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세속교회의 모습에 머물러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노비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며 사랑을 실천했던 순교 선열의 후예로서 매우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포함한 지구촌의 교회 내외에 퍼진 어둠과 불안의 기운을 거슬러, 교회는 다가올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8)부터 2016그리스도 왕 대축일’(1120)까지의 기간을 자비의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자비로운 삶을 통해서만이 증오와 절망을 물리치는 참 평화와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여 약육강식의 원칙에 기대어 편법과 불법에 눈감고, 양심과 원칙을 스르르 내려놓으며 물질적 성공을 축복의 척도로 삼았던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되돌려야 합니다. 창조, 육화, 부활의 신비로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자비 앞에 서야합니다. 한없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성사 안에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힘과 불의에 맞서 정의를 선택하고 실천할 용기, 죄를 이기는 지혜를 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아픈 이를 치유하고 가난한 이와 가진 것을 나누며, 신앙을 선포하는 용기를 심어줍니다. 죄로 얼룩진 우리를 씻어주어 창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려 주시며, 탐욕으로 뒤틀어진 이웃과의 관계를 온전한 모습으로 복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자비의 은총만이 진정한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38)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세상이 만날 수 있도록 가장 깊숙한 마음자리를 비우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은총을 간청합시다. 가장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의 신비를 온 몸으로 순종하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 순교성인들에게 전구를 청합시다. 더불어, 한민족이 서로를 적으로 대하는 비극적인 현실이 화해와 통일로 변화되는 기적을 일치와 평화의 하느님께 간청합시다. 자비의 희년의 놀라운 치유와 용서의 은총이 죄로 비틀어지고 갈라진 우리 자신과 교회, 사회와 민족을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주시길 간청합시다.

 

성모님, 자비의 빛을 가리는 탐욕과 분노, 불안과 두려움을 거두어주시고 한국 교회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를 증거하는 성사가 될 수 있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순교 성인들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20158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