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8-12 00:00:00

2016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로 들어올림 받으심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특히 금년은 전 세계 교회와 함께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면서 맞이하는 대축일입니다. 나아가 한국 교회로서는 병인 순교 150주년안에서 맞이하는 광복 71주년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깊은 의미를 가진 대축일을 맞아 먼저 우리 모두 감사와 기쁨의 인사를 나눕시다!

 

이제 자비의 특별 희년도 불과 5개월 남짓 남았습니다. 교회가 자비의 해를 선포했지만 세상은 자비와 반대 방향으로 돌진하는 듯합니다. 증오와 폭력으로 일그러진 세상은 매순간 분노의 전쟁 가운데 서 있습니다. 잔악한 테러로 스러져간 무고한 죽음이 하느님의 부재와 신자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게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보여주는 온갖 야만성과 잔혹함이 우리의 본성을 되묻게 합니다. 또한 신냉전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움직임들이 인류 역사 안에서 한국 사회와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데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정의 몸으로 성자의 잉태를 온 존재로 받아들이며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고백이 인류 구원의 새 역사를 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신 성모님의 삶은 예수님의 성장과 공생활을 비롯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아들을 품에 안은 그 순간까지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늘에 올려지신 성모님께서 모범으로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앙의 길은 이러한 신뢰와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순종과 신뢰의 길은 죽음의 순간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고백한 우리 순교 선열들의 삶에서도 확인됩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한 순간의 용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에게 직접 전해진 신앙은 분명 성령의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성령의 활동에 응답하며, 철저하게 사랑과 나눔과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이기심과 탐욕, 삶에 대한 본능적 애착 등을 모두 거스르며 한국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삶이 순교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병인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고 자비의 해를 지내는 한국 교회는 선조들이 보여준 순교의 삶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순교는 죽음의 순간에 박제된 정지화면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하는 신뢰와 순명의 길이며 인간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는 기적의 순간입니다. 혹자는 지금은 박해가 없는데 순교를 어떻게 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박해와 순교 앞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주의, 이기주의, 탐욕 등이 사회제도의 옷을 입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고 명하신 사랑, 나눔, 섬김의 활동을 가로막습니다. 순교는 이러한 악에 맞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감동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이기주의를 이타주의로, 지배의 본능을 섬김의 자세로, 탐욕의 욕정을 나눔의 기적으로 변화시켜 가는 삶이 오늘의 순교입니다.

 

식민지배와 광복, 동족상잔의 비극 안에 함께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오늘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시는 것은 안락함에 젖은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무너지고 고통 받아 일그러진 이 세상을 치유할 자비와 용서의 힘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통곡하고 절망하며 두려움에 떠는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끊임없이 기도로 청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초대받아 그분과 함께 사는 영원한 기쁨을 살도록 부름받은 신앙인들의 증거와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며 절박한 때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한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과 우리 교구의 주보성인으로서 늘 전구하여 주시는 성모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분노, 배척, 혐오, 불안, 죽음의 기운이 물러가고 용서와 포용, 신뢰와 의탁,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도록 삶의 기도를 바칩시다. 성모님께서 인류 역사, 특별히 어려움에 처한 남북문제와 현실적 어려움의 상처를 벗어나 모든 이들이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시다.

 

성모 승천을 기념하며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이제 성모님과 순교선열들의 뒤를 따라 우리도그 부르심에 라고 대답합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도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합시다. 순교합시다! 매 순교의 순간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며 한걸음씩 전진합시다! 구체적으로 시노드 작업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사목의 지침 안에 실현되고,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다 함께 마음을 열고 노력합시다!

 

병인 순교 150주년과 광복 71주년을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함께 기념하는 한국 교회의 이러한 증거가 신앙의 씨앗을 다시금 꽃피워 세계 교회에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2016년 세계청년대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선한 마음을 내려받고(다운로드하고) 복음을 안내자로 삼기를(네비게이션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순교 선열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지닌 대전교구가 2년 전 오늘, 교황님의 방한이 남긴 감동을 되새기며 순교의 얼로 가득한 은총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번 성모 승천 대축일을 축하드립니다!

 

20168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