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08-13 00:00:00

2019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2019 교구장 성모승천대축일 메시지

2019년 성모 승천 대축일 메시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9)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살상과 재산 피해를 남긴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약 2천만 명의 군인과 4천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많은 사람이 전염병, 기아, 학살, 성폭행 등으로 전쟁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600만이 넘는 유다인을 학살하는 동시에, 530만 명의 독일인 사상자를 내며 동과 서로 나누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이후 유럽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동맹으로 나누어져 정치적, 군사적으로 냉전(冷戰)을 치르게 됩니다. 한반도에서도 일본의 항복으로 일제 강점기가 끝났지만, 미국과 소련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 분열의 싹을 틔우다, 1950년 같은 민족이 갈라져 싸우는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서로를 죽이며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키는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뼛속 깊이 실감하는 때였습니다.
이런 참혹한 삶의 현장에서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십니다. 성모 마리아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친 뒤에 하늘로 오르셨다는 것은 초대 교회 신자들로부터의 믿음이었는데, 교황은 마리아를 본받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인간 삶의 가치를 더 잘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믿음이 우리 자신의 부활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리라 확신했습니다. 이렇게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본성이 미워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데에 있지 않고 고귀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인간의 존엄성과 미래는 하느님 안에 있을 때 가장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천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한국교회는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서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실 뿐만 아니라,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서 풀려난 광복절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같습니다. 1949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축일에 국제연합(UN)으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아, 한국전쟁 중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 한반도의 모든 백성을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성심께 봉헌해 드렸습니다. 오늘을 경축하면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 참된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하느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루카 2,14)라고 찬미하였고, 고별말씀에도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며 무력을 통해 추구되는 일시적인 평화와는 다른 참 평화를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세계가 거의 동서 이념의 대결과 갈등체제에서 벗어나 세계화와 지역 간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에서만은 냉전의 유물을 다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삶에 애정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시면서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이라고 탄식하신 예수님은 한반도를 보시며 같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비롯하여 선량한 세계의 시민들도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은 지난 6월에 이루어진 세 정상 간의 만남을 기뻐하며, “이런 만남이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평화를 향한 여정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는 희망과 더불어 아직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을 증가시키고 일치와 화해를 방해하는 일은 비복음적 행태입니다.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청와대에서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며,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사 32,17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는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이사 32,17)고 선포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하였습니다. 정의는 불의한 구조와 제도를 척결하는 구체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동시에 불의한 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그들을 포용하는 사랑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는 용서와 관용, 이 세상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는 자세를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여정은 잘 포장된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글 속을 헤치며 길을 찾는 노력입니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난관에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로’ 불러오는 일은 우리 신앙인들의 과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중대한 과제를 부여받았습니다. 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세계평화가 샘솟는 원천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가 정의로부터 굳건히 정립될 수 있길 희망하며, 선량한 사람들과 교회의 연대 속에 일치와 화해의 열매를 맺길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오늘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는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하리라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일을 체험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맞으며 그 변화를 하느님이 허락하신 일로 알아보고 인사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성찰함으로써 하느님의 일하심을 알아보고 서로를 격려하며, 세대와 나이를 뛰어넘어 믿음으로 우정을 나눕니다. 이렇게 일상의 사건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알아보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서 일하심을 믿을 때 우리는 정녕 복됩니다. 우리 삶에서도 반갑게 맞아주고 격려해 준 또 다른 ‘엘리사벳’과 우리를 방문하여 믿음의 체험을 들려준 ‘마리아’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이런 영적 동반자는 인생의 길을 함께 걸으며, 함께 밥을 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진실로 서로를 위합니다. 그리고 이런 친구와 나누는 우정은 우리의 길을 더 힘차게 갈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지난 4월에 은혜로운 교구 시노드의 여정을 마감하고, 시노드의 체험을 실행에 옮기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시노드의 삶을 사는 교회의 모습을  ‘공동합의성’(synodality)이라고 표현하십니다. 바로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상을 제시하십니다. 교황님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교회와 시노드는 같은 말”이라고 한 것을 인용하시며, 하느님 백성 모두가 그리스도를 향한 ‘함께 걷는 여정’의 교회 안에서는, 누구도 다른 이보다 높을 수 없으며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십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은 때론 교회 안에 긴장과 토론을 야기하지만 바로 그 자체가 참된 친교를 이루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십니다. 시노드의 공동합의성은 교회의 삶이기에 우리 교구, 본당과 모든 단체도 이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공동체 지도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령의 힘으로 이뤄지는 하느님 백성 모두의 성찰과 식별, 판단을 존중하며 봉사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또한, 공동합의성은 교회의 반성과 자기변화의 열매입니다. 교회가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비우고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성직우월주의와 서로 간의 우열을 가르는 일, 그리고 이웃과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세는 설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이처럼 공동합의성을 강조하여야 할 만큼 우리 교회가 하느님과 이웃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거나 발걸음을 맞추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오늘 복음의 ‘마리아의 노래’(루카 1,46-55)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찾아봅시다. 이 노래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이라는 찬미가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으면 우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 자비가 우리 삶의 기준, 곧 시노드의 공동합의성을 살아갈 용기와 영적인 힘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느님, 저희가 당신 사랑의 힘으로 참 평화와 시노드를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해 빌어 주소서.


                                           2019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