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86
  • 글쓴이 : 지요하
  • 작성일 : 2005/03/26
  • 조회수 : 1,955

왼손잡이의 '균형'에 대한 생각

왼손잡이의 '균형'에 대한 생각 <1> 나는 왼손잡이이다. 어머니가 왼손잡이이신 탓이다. 우리 7남매 중에서 나와 바로 아래 누이동생이 어머니의 유전 인자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내 왼손잡이 유전 인자는 딸아이에게로 갔다. 그래서 우리 집은 다섯 가족 중에서 왼손잡이가 3명이나 된다. 좌·우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좀 묘한 왼손잡이다. 오른손도 잘 쓰기 때문이다. 왼손과 오른손을 고루 잘 쓰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숟가락질과 글씨 쓰는 일은 물론 오른손으로 한다. 아기 시절 처음 숟가락을 잡을 때는 왼손으로 잡았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것을 어른들이 자꾸만 오른손으로 잡도록 교정을 해주어서 결국 숟가락질 젓가락질은 오른손으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글씨도 처음에는 왼손으로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무렵의 기억이 아련하다.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니 선생님이 오셔서 오른손으로 잡도록 교정을 해주셨다.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고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내게 각별한 도움을 주셨다. 내 손을 잡고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의 손이 내 손에 덮였던 그 따스했던 감촉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에게 아이들과 피부 접촉을 많이 하도록 권고하곤 한다. 우리의 전통적 식사 문화 때문에 오른손 숟가락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글자는 애초부터 오른손으로 쓰게끔 되어 있는 것이었다. 왼손잡이에 비해 오른손잡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오른손잡이 위주로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나는 글씨를 잘 쓰지 못한다. 지독한 악필이다. 어쩌다 손으로 글을 쓰게 되면 적은 글자도 몹시 힘들어 한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니 잘 쓸 리 없다. 게다가 육필로 글을 쓰던 시절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을 속필로 옮기다 보니 글자 획의 순서를 무시하게 되었다. 글씨를 적당히 쓰고 살아야 잘 쓸 수 있는 법인데, 너무 많은 글을 쓰다 보니 자연 악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숟가락질과 글씨 쓰기는 오른손으로 하게 되었지만 그 외의 일은 모두 왼손으로 했다. 우선은 딱지 치기와 팽이 돌리기, 돌팔매질과 낫질 등을 왼손으로 했으니 누가 보아도 나는 왼손잡이였다. 나는 구기 운동에는 만능이었다. 정말 못하는 운동이 없어서 학창 시절에는 팔방미인 소리를 들었다. 물론 왼손으로 기량을 발휘했다. 배구의 서브와 스파이크도, 농구의 슛도, 야구의 공 던지기도 모두 왼손으로 했고, 테니스의 라켓도 왼손으로 쥐었다. 그런데 탁구 한 가지는 오른손으로 했다. 중학생 시절에 탁구만큼은 스스로 오른손으로 하고자 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탁구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훨씬 힘이 들었지만 나는 끝내 오른손 탁구를 익혔다. 하지만 왼손잡이의 오른손 탁구는 한계가 빤했다.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한때 나는 말더듬이였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말을 제법 잘해서 학급회의 때 의견 발표를 가장 열심히 하곤 했는데, 중학생 시절 한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생활했다. 왜 갑자기 말을 더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 왼손잡이가 억지로 무리하게 오른손으로 탁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 그런데 축구를 할 때는 오른발을 주로 썼다. 발은 손과 달리 오른발잡이인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나는 스스로 흥미롭게 여기기도 했고, 또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다. 손은 왼손잡이이고 발은 오른발잡이이니, 내 몸은 선천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균형을 많이 생각했다. 운동을 할 때 왼손이나 오른발만을 쓰지 말고 양손과 양발을 고루 잘 쓰고 싶었다. 테니스나 탁구, 야구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손을 위주로 해야 하지만, 배구나 농구, 축구 같은 것은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구를 할 때는 오른손 스파이크도 많이 익혔다. 세터의 토스가 잘못되어 공이 오른손으로 왔을 때도 효과적으로 오른손을 쓸 수 있었다. 축구도 왼발을 열심히 익혀서 어느 포지션을 맡아도 소임을 다할 수 있었고, 어느 위치에서나 양발을 고루 쓸 수 있었다(중3 시절부터는 포지션이 골키퍼로 굳어졌지만…). 아무튼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구기 운동의 일부 종목은 오른손으로 하고, 양손을 비교적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손과 달리 발은 오른발잡이로 태어났지만 왼발도 부지런히 사용해서 역시 양발을 고루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왼손잡이와 오른발잡이 구도를 안고 태어난 내 신체 구조처럼 나는 균형과 중심을 지닌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왼손잡이'이되 오른손도 많이 사용하고, '오른발잡이'이되 왼발도 많이 사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신체적 균형을 이룬 것처럼 나는 매사에 좌·우 균형을 잘 유지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물론 균형이란 어떤 산술적인 시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터였다. 균형은 곧 중심일 터였다. 중심이 있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고, 균형을 유지해야 그 중심이 온전해질 수 있을 것이었다. <3> 나는 좌·우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한 이영희 교수의 말을 깊이 공감하지만, 좌·우로 편이 갈라지는 것은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파니 좌파니, 우익이니 좌익이니 하는 말들이 왠지 뜨악하게 느껴지는 심사는 오늘에도 여전하다. 아울러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진보 속에도 보수가 있을 수 있고, 보수 속에도 진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와 보수를 칼로 두부 모 가르듯이 딱 가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고 또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도 있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시대의 자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좌파, 또는 좌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좌익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말의 경계심 같은 것이 내 마음 안에서는 늘 작용한다. 좌익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는 우익에 대한 대칭적 개념일 터이다. 말 그대로 양 날개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비행기와 새는 양 날개가 있어야만 날 수 있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물고기도 양발과 양 지느러미가 있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균형을 따지자면 우익 못지 않게 좌익도 필요하다. 하지만 좌익의 실질적 의미는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급진주의·사회주의·무정부주의·공산주의적인 인물이나 단체, 경향 등을 일컫는 말로 쓰여진다. 1930년 이래 영국 하원의 의장석에서 볼 때 왼쪽에 반대파인 야당이 자리잡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고, 1872년 프랑스 국민회의에서 왼쪽에 급진파인 자코뱅당, 중앙에 중간파, 오른쪽에 온건파인 지롱드당이 의석을 잡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후자가 정설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형성된 사회민주당 내의 급진파에 대해서 사용된 사실로 말미암아 좌익은 일단 온건 보수의 반대 개념으로 통한다. 여기에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방 공간 시절 이전부터 확실하게 공산주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로서는 철저히 사절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비판적 지식인이기는 하되 결코 공산주의자는 아닌 까닭이다. 나는 합리적 온건주의를 좋아한다. 급진적 혁신주의도 경계하면서 극우적인 보수주의도 싫어한다. 이미 실패한 사상인 공산주의의 잔영을 폐쇄주의 수법으로 유지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한량없다. 북한의 주체 사상에 현혹되는 학생들도 걱정스럽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군사 독재 권력에 봉사하며 민주화를 저해해 온 극우 보수주의도 혐오한다. 파렴치한 폭압 정권을 지지하는 어용이 우익이라면 폭압 정권에 반대하는 의미로서의 좌익을 선택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도 예전에 피력한 바 있다. <4> 나는 좌·우라는 개념보다는 '균형'과 '중심'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균형과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정의감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 정신과 정의감이 없고서는 사고의 균형과 중심을 얻을 수 없다. 그동안 나는 많은 이들로부터 좌파, 또는 진보라는 지목을 받아 왔다. 이유는 분명할 것 같다. 저 젊은 시절 유신 독재 때부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생각을 키워 왔고, 오랜 세월 타성화된 낡은 관념 속에 묻혀져 온 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글을 계속적으로 쓰는 까닭이다. 옛날 독재 시절로부터 유래한 관성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 좌파적 시각이라고 한다. 친일 잔재 청산과 과거사 정리를 주장하면 진보라고 한다. 또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갈망하는 글을 쓰면 좌파니 진보니 하며 공격을 한다. 때로는 '빨갱이'라는 극언도 퍼붓는다. 옛날 독재 시절의 불의와 폐습을 비판하고 확실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갈망하는 것이 어째서 좌파일까? 친일 잔재 청산과 과거사 정리가 어째서 진보만의 전유물일까?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는 것은 온 민족의 합심이요, 과제가 아닐까? 비록 수구적 낡은 관습을 비판하는 것이긴 하되, 반드시 좌파적 시각을 지녔기 때문에 내가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진실과 정의 차원에서 옳은 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쓰고 또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진실과 정의를 생각한다. 진실과 정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거기에 좌파니, 진보니 하는 것들을 굳이 결부시키지 않는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글을 쓰면서 좌파니 진보니 하는 말들을 의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좌파이고 진보이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나는 다만 민주적 가치 질서와 정의에 바탕한 사고의 균형과 중심을 추구할 뿐이다.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되 양손을 고루 쓰고, 오른발잡이로 태어났으되 양발을 고루 쓰는 사람이듯이, 나는 사고의 균형을 유지하며 이 세상을 살고 싶을 뿐이다. 균형은 곧 중심이고, 중심은 곧 균형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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