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20
  • 글쓴이 : 지요하
  • 작성일 : 2005/03/31
  • 조회수 : 1,662

고3 딸아이와 포도주를 마시다

고3 딸아이와 포도주를 마시다 <1> 지난주 토요일 오후 천안에서 공부중인 딸아이가 집에 왔다. 고3이 되어 강박감 속에서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부활대축일 미사를 고향 성당에서 지내고 가족과 함께 부활절을 지내기 위해 집에 온 것이었다. 주5일 근무제 부분 적용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휴무를 하지만, 고3은 평일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서 오후 5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고 했다. 그 자율학습을 마치고 마지막 직통 버스로 밤에 집에 온 것이었다. 부활절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집에 와 준 딸아이가 나는 기특하고도 고마웠다. 부활절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주일에도 공부에만 집착할 만큼 딸아이가 공부벌레인 것도 아니었고, 고3 처지에 하루 공부를 팽개치고(?) 집에 온 딸아이를 나무랄 만큼 우리 부부가 야멸찬 부모인 것도 아니었다. 부활절을 지내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딸아이를 천안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했다. 주말에 딸아이가 집에 오면, 겨울철 눈이 내리거나 도로 결빙으로 새벽 운전이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매번 월요일 새벽에 딸아이를 태워다주는 일을 하곤 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세월도 벌써 3년째가 되었다. 새벽 천안행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딸아이가 내년에는 서울로 대학교 진학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아무튼 내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월요일 새벽에 녀석을 천안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할 때는, 대개 5시쯤 집을 출발한다. 중도에 해미성지에 들러 물을 긷는 경우가 많다. 딸아이가 마시거나 밥물 국물로 사용할 물은 병에 담고, 원룸 3층 주인집에 드릴 물은 플라스틱 큰 통으로 2통씩 긷는다. 천안에 갈 적마다 매번 2통씩 물을 길어 가서 3층까지 날라주곤 한다. 나의 그런 작은 정성과 노고 때문에도 더욱 우리 가족은 딸아이 원룸 주인집과도 아주 친숙하고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매번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 때마다 서산휴게소에 들러 우동으로 아침 식사를 하곤 한다. 내 딸아이는 특히 유부우동을 좋아한다. 우리 부녀가 굳이 집에서 새벽밥을 먹지 않고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은 고속도로의 휴게소 덕분이다. 6시 이전 이른 아침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산하다. 왠지 쓸쓸한 기분이 감돌기도 한다. 어둠이 깔린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어둠 깔린 이른 아침의 한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휴게소에서 부녀가 마주앉아 우동으로 아침을 먹는 기분은 왠지 각별하다. 조금은 낭만적인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나는 그 기분이 좋다. 그 기분을 즐기다 보면 문득 딸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생긴다. 갑자기 집에 있는 마누라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서 괜히 집으로 전화를 걸기도 한다. 때로는 그 속에서 세월이 흐르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고교생 딸아이와 이른 아침의 한산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으로 아침을 먹는 이 각별한 기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엊그제 아침은 좀 더 스산해지는 기분이었다. 세월 가는 소리가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았고…. <2> 이번에는 천안에서 이내 되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에 <충남예술>지 편집회의가 있는 탓이었다. 내 천안 출타 예정에 맞추어 편집회의 계획을 잡아 준 '충남예총' 집행부에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하루종일 딸아이의 원룸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 저녁의 충남예술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와서 하룻밤 묵고 돌아가리라는 아빠의 일정 계획을 들은 딸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밤 열한시 이전에 돌아오시면, 열한시쯤에 저희 학교로 마중 나와 주세요." "학교로 네 마중을?" "좋은 기회잖아요?" "좋은 기회이긴 하다만, 아빠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니?" "그러는 아빠들이 많거든요. 차를 가지고 와서 딸 태워 가는 아빠들도 많구요." 나는 약속을 했다. 난생 처음으로 밤 11시쯤에 딸아이의 학교로 녀석을 마중 나가는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지레 야릇한 감회가 내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딸아이에게 미안해지는 마음과 가엾어지는 마음도 은근히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다. 11시에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나올 적마다 수많은 엄마 아빠들이 미리 마중 나왔다가 자기 딸을 차에 태우거나 함께 걸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딸아이가 부러움을 느꼈던 게로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일찍이 천안 같은 도시에다 삶의 터전을 일구지 못한 것이 다시금 면구스러워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나는 녀석과의 그 약속을 지켰다. 밤 10시쯤 모임 자리를 끝내고 딸아이의 원룸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었다가 11시 5분 전에 집을 나섰다. 딸아이의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서 있자니 수업을 마친 고3 여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어서 교문을 나가는 아이들보다 차를 타고 나가는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장대한 차량 행렬이었다. 그 많은 차들이 어느 구석에 있다가 그렇게 줄을 지어 나오는 것인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밤 11시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태워 가는 그 수많은 차량들의 행렬을 보면서 나는 주눅 같은 것을 느꼈다. 전쟁 분위기를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지금 전쟁터에 들어와 있다는 확실한 체감 속에서 나는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딸아이와는 쉽게 만났다. 녀석은 혼자 걸어왔고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에 반가움과 생기가 묻어 있었다. "우리 곧장 집에 가지말고, 교문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 가서 뭐 좀 먹고 갈까?" "할머니가 아시면 걱정하실 텐데요. 또 딸 살찌운다고…." "내가 보니 이제부터는 뭘 먹어도 살 빠질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교문 앞의 포장마차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 아이들보다 걸어서 가는 아이들이 적어서인지 포장마차 앞은 별로 붐비지 않았다. 딸아이는 천원짜리 '닭꼬치'를 먹었고 나는 5백원짜리 어묵을 먹었다. 또 하루 학교 공부를 마치고 나온 딸아이와 심야에 포장마차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각별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전쟁터에서 잠시 여유와 휴식을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뜨거운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 마시면서도, 그 속에서도 세월 흐르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3> 1천 원짜리 토스트 하나를 사서 들고 집으로 가면서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밤 열 한시에 학교 공부를 마치고 나온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그럼요.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학원에서 심야 공부를 하고 새벽에 집으로 가는 아이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까지 자고 아침에 집에 가거나 곧바로 학교로 오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는 아이들이 넌 부럽지 않니?" "아뇨. 부럽지 않아요." "정말?" "전 학교 공부로 충분해요. 그렇게 심야에도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다음날 학교에 와서는 수업 시간에 졸기나 한다면, 그건 바보짓이에요." "정말 학원이나 독서실 공부 때문에 학교에 와서는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도 있니?" "그럼요. 전 심야에는 잠을 푹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시험을 보는 시간은 낮이잖아요. 낮에 시험을 보니까 낮에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집중을 할 수 있는 훈련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그러니까 전 학교 공부를 마치고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서 계속 공부하는 애들이 부럽지 않아요. 그게 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갖는 강박감 때문이라고 봐요." "우리 딸이 또 한 번 아빠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네." 잠시 후 우리는 딸아이의 원룸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잠시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딸아이는 옷을 갈아입고 씻는 일을 했다. 빨래 거리도 두어 가지 세탁기 안에 넣는 것 같았다.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도, 그리고 학원이나 독서실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잘해 주는 딸아이가 나는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미안한 마음도 늘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열두 시가 다 되었지만, 우리 포도주 한 잔씩 할래?" 딸아이의 원룸에는 내가 전에 갖다 놓은 포도주가 한 병 있었다. 60년 후인 2064년, 태안천주교회 100주년 때를 대비하여 땅에 묻느라고 마련했던 마주앙 미사주, 4년산 포도주였다. "좋아요. 저도 작은 잔으로 한 잔 마실게요." 의외로 딸아이는 호응을 했다. 곧 우리 부녀는 밥상을 펴놓고 마주앉아 유리잔에 포도주를 따랐다. 그리고 서로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그러고 보니 고교생 딸아이와 마주 앉아 함께 술잔을 기울여 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녀석이 내년에 대학생이 되면 종종 있게 될 일이지만, 고3이 되어 한창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딸아이와 심야에 포도주 건배를 해보는 것도 각별하다면 각별한 일이었다. 녀석이 어느새 그렇게 자라서 아빠와 포도주 건배도 하게 되었다니, 나는 거기에서도 세월 흐르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하면서도 왠지 절로 흐뭇해지는 마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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