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5999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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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죽음관

주말 조간신문에 죽음이라는 내용을 실른것은 금기라면서도
어수웅기자는 두가지의 이야기를 실었다.

전립선 말기환자인 아버지가 암제거 수술을 잘받았지만,
배변,호흡,전신감,욕창등의 삶의 질이 추락하는 사례와 망팔이 된 소설가 김훈의 죽음관을 올렸다.

아들은  암수술후 겨울에 끝내 떠날 것을 아버지가 알았다면,
그 가을을 그렇게 보냈을까‥
라는 자괴심을 토한다.


김훈은 동갑터울 선배의 화장장에서 한되 반되는 뼈가루는, 입자가 곱고 질량감이 느껴질수 없는 물체의 먼 흔적같아서,
명사가아닌  흐린이라는 형용사였다고 했다.

그가 볼때 그것은 완강한 침묵과 범접할 수 없는 
적막감을 보였다 .

집에 돌아와 서랍안을 열어보니 죽음앞에서 모든 것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끼던 등산장비도 이제 젊은 후배에게 주기시작했고 
돈 이나 의료보험 축내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려는 생각을 했다.

삶에 대해 오래된 내공과 성실한 세월을 살았다면,
죽음은 어쩌면 날이 저물고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주 다큐방송에서 32세 로스쿨학생의 암투병끝에
죽음을 맞이한 청년은 , 몇 년간의 시간을 몇배로 늘리기위해 주위사람들에게 사랑을 마구 주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애착하는 생의 남은 시간 특별히
 할일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독일의 어느 시인은 파란 하늘과 구름을 자주 
보고 싶다고 했다.
사랑 만이 너무 일찍 사라지는 허무함과 
맞바꿈이라는 것을  왜
우리는 진작 인지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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