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6261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9/09/22
  • 조회수 : 447

대흥동성당 100년의 시간.종소리.

태풍으로 비가 세차게 흩뿌리는 주일 오후, 
대흥동 성당  【100년의 시간】을 다녀왔다.

이남규,최종태교수가 제작한 열두사도
조각품들이 1층 어스름한 전시실에 살아있는
성인처럼, 순백의 육감이 느껴지듯 그 처를 
드러내고 있다.

가나 화랑에서 두어번 최종태교수님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 예술가의 진면목을 느낄 
대작이 이 작은 공간에서 목도되는 것이 신기하였다

80대 후반에 이르는 예술가의
진화가 60년대 이 작품들에서 시작되었기에 
그 순수성이 깊게 깃들어 있었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유한적 가치가 종교라는
무한적 가치의 도정에서, 조형예술을 구사하여
이른 전시물이, 
1층 의 허름한 전시실과 대비되니, 오히려 
12사도의 묵시록이 깊숙히 체화되었다.
성인은 가난하지 않았던가.

2층에는 그 유명하신(?)
오기선 신부님의 서품 사진과 두봉주교님의 
실물영상이 비쳐진다.

대전충남의 신자라면 누구하나 이 두분을 
모르거나 존경하지 않은 신자는 없을 것이다.

소개글 에서 신자들을 웃고 울렸다는 오신부님은 
어려운 가정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주신 성자의
행보를 오랫동안 베푸셨다.
진정한 GOD Father.

프랑스 위스크 생 폴 수도원에 보관된 앙드레 부통
신부님의 유품속에서 찾아낸 귀한 벽화 10점이
소개되었는데, 탄성을 지르게 만드셨다는 
신부님의 붓을 통한 열정의 선교가 그대로 전해져 
감정을 고조시킨다.

황민성,경갑용 주교님의 모습도 아련히 
비친 전시실을 나와 2층 끝자락 성당 종소리에 
멈추었다.

70대 중순의 방지거 형제님이 계단을 
오르고,  타종의 밧줄을 잡기전 기도모습이 비쳐진다.
이윽고 밧줄을 당기니 종의 추가 흔들린다.

그렇게 상체 온 힘을 들여
밧줄을 당기는 모습을 생각 못했다.

이 종소리는 초등학생때,사춘기때,군인일때,
20대후반의 청춘일때,
아버지가 되었을때도 
그대로 들렸던가 ‥

연두색빛인지,블루톤인지,
주황색인지‥ 그 종소리는
새벽의 여명과 한 낮의 햇빛, 황혼의 명암에  따라 
색갈이 바뀌듯 들리었다.

호주 사막에 있는 지구의 배꼽이라는 울룰루
의 칼라가 하루에 몇번씩 바뀌며 보이듯히‥

그러나 그 소리는 언제나  아름다웠고 경건하였다.

대흥동 성당 건립시 뮈텔주교님은
언젠가 여러분의 교회는 이 도시의
중심이 될 것이라 하셨다.

한 종교의 기념사를 넘어, 대전이라는 
한 도시역사의 큰 획이기도 한 
<대흥동 성당 100년의 시간>은 
신자들에게 축적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여전히 잿빛 먹장 하늘에서
내리는 빗길에서,
방지거 형제님의 마지막 타종식이 주일 
10시에 있었다는 계시물이 보였다.

행운인지 방지거 형제님이 무려 50여년만에
영구퇴근(?)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가 유외과에 입원중일때
성당 종소리를 듣고 얼마나
위안이 되셨는지 기억이 난다.

무속신앙에 빠진 분이 성당 으로 가신 것도
종소리 였을 것이었다고, 당시 국민학생도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방지거 형제님에게 들리듯
말듯 사연을 이야기하며
고마웠다고 말씀드렸다.

그 종소리가 기계로 조종되는
디지털시대가 어쩌면 다른 곳보다 훨씬 
늧었는지도 모르지만,아쉬운 마음이 
크다.

퇴장하는  저 분이 들려주는  종소리만큼
앞으로 들릴 종소리도  따뜻할 것인가 하고
되뇌이며 줄기차게 내리는 가을비 속을 걸었다. 

댓글/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