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6377
  • 글쓴이 : 김로사
  • 작성일 :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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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가는 길에...


비가 오락가락 하는 토요일 오전
성당 가는 길에 버스 승강장을 지나가는데, 
뒤에서 "어디 가?" 라고 묻는 말에 그저 무심코 돌아보았다. 
살아 온 연륜에 온갖 고난의 흔적이 묻어나는 모습의 여든 중반 쯤 되신 
할머니께서 내게 묻고 계셨다.
"성당 가요."
"성당 가? 나는 버스 탈라구 허는 줄 알구..."
라고 하시는 말씀 중에 '성당 가"라는 
그 짧은 말에 어딘지 무척 친숙한 말투셨다.
"성당 다니셔요?"하고 여쭈니,
"이~ 나는 팔남맨디 나만 빼고 다 성당 댕겨,
다 도시서 살응께. 근디 난 성당 댕기다 말었어.
우리 집서 성당까지 너머 멀어. 
뻐스 타고 대교에서 내려서두 한참 걸어가야 헝께.
택시 타고 성당까지 갈라먼 만 오천원 줘야 허넌디...  
그래서 댕기다 말었어."
아쉬움이 물씬 풍기는 말씀이셨다.
"세례는 받으셨어요? "
"못 받었어~ 댕기다 말었다니께. 어여 가.
근디  대교 가는 뻐스 시간표 좀 봐줘."
"예...  9시에 있는데요. 어쩐대요. 지금 9시 7분인데..."
"어여 가~ 난 여기서 좀 쉬었다가 워치기든 갈 테니께." 
거기서 그 할머니를 위해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머뭇거리는 날 보고 "어여 가라니께."
손짓하시는 할머니께 꾸벅 인사하며,
"조심히 잘 들어가세요." 
묵주 기도하며 가는 길이었는데...
다시 이어서 성모송을 바치는 길이 무거웠다.
나의 무능함이...
그리고 하느님께 자주 떼를 쓰고 사는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곳곳에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성당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여러 사정이란 참으로 다양하다.
너무 빈곤해서,
너무 멀어서,
심신이 너무 아프고, 
육신을 움직이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여기서 '너무'라는 의미가 매우 적절한 표현의 '너무'이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일한 생각'과 '게으름'으로 
신앙을 가볍게 여기며 사는가.
육신이나 마음이 다소 불편하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궐한다.
그리고 세속의 것과 육신의 안위를 
신앙보다 더 중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는 간혹 주일 오후 9시 미사를 드리는 본당도 있단다.
신자들의 편리를 위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 거의 모든 게 도시의 사람들,
그래도 살만한 사람들 위주로 돌아간다.
사회도 교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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