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374
  • 글쓴이 : 윤종관
  • 작성일 : 2012/11/02
  • 조회수 : 2,884

면천! '순교성지'로 대전교구는 선포해야 합니다!

면천읍성 복원 첫 삽… “역사가 오늘 기억할 것”

1일 충남 당진 면천읍성 남문 복원 기공식 현장

오마이뉴스 2012.11.02 11:03 / 최종 업데이트 2012.11.02 15:06 / 심규상(djsim)


“면천읍성 남문(옹성) 복원 기공식 행사장이 어디에요?”
 
1일 오후 면천읍성 복원 기공식 현장을 보기 위해 충남 당진시 면천면을 찾았다. 곳곳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하지만 좀체 행사장을 찾을 수 없다. 한참을 헤매다 한 할머니께 길을 물었다.
 
“나두 거기 가는 참이여. 저 앞에 가는 사람들도 다 거기루 가는 사람들이여.”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 현장에 도착해 보니, 행사가 시작되려면 1시간은 족히 남았건만 벌써 100여 명이 읍성 앞에 서성이고 있다. 면천면 주민들에게 읍성 복원 기공식은 기다림이고 설렘이었다. 이날 이철환 당진시장도 인사말을 통해 "역사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종 21년(1439년) 축성된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내포지방 서북부의 정치 경제 군사 행정적 요충지였다. 지금의 면천은 면 단위로 면민 전체가 3600명에 불과하지만 1914년까지만 해도 면천은 거대한 군청소재지였다. 왜구침략과 식량수탈을 막아내는 역할을 담당해오던 면천읍성이 무너져내린 것은 1950년 말이다.
 
600년 가까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오던 읍성은 인근 저수지 공사를 위해 제방 돌로 쓰이면서 허물어졌다. 관아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소실됐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객사는 해방 후 초등학교 교실 및 교무실로 사용돼 모습을 유지하다 현대식 건물로 지으면서 헐려 자취를 감췄다.
 
주민들 스스로 읍성 정비 사업에 나선 것은 2004년이다. 면성읍성복원추진위원가 만들어졌고, 당진시는 성벽과 문루, 관아를 복원하고 저잣거리, 영랑공원 등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이날 남문 정비 사업은 본격적인 읍성 복원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식이기도 했다.
 
이권배 읍성복원추진위원장은 이날 행사장에서 말한다.
 
“오늘 남문 정비 사업을 위해 꼭 기억해 주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곳 복원 현장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23채의 민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삶의 터전을 내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 눈물을 흘리면서도 읍성복원의 큰 뜻을 위해 거주지를 내주었던 분들이 참석해 계십니다.”
 
곡절 많은 면천읍성 복원사업에는 2020년까지 모두 292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남문 외에 동문, 서문을 비롯 전체 성곽 1336m중 330m가 복원된다. 관아 건물 중 객사, 동원, 내아, 외책실, 사령청 등 일부와 옛 도로 및 수로 일부도 옛 모습을 회복할 예정이다. 복원되는 관아에는 연암 박지원이 4년여 동안 면천군수를 지내면서 저술한 문헌도 전시된다.
 
마을 만들기 연구도 한창이다. 면천면을 대표하는 복지겸(고려 개국공신)에 대한 연구에 이어 면민들은 매년 진달래를 심으면서 면천진달래민속축제를 열고 있다. 면천읍성 내와 외곽 마을 및 산 전체를 진달래로 뒤덮자는 제안이 나올 정도다. 이날 기공식 현장에는 제주 및 축하주로 면천을 대표하는 두견주가 선보였다.
 
진달래꽃으로 빚는 두견주는 한국에서 전해지는 술 중 그 유래가 가장 오래된 술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내포문화권의 중심지, 동학농민전쟁, 의병운동, 의병들의 면천성 전투, 독립운동… 옛 명성을 듣고 지금의 면천을 찾는 이들은 무너진 성터뿐인 초라한 모습에 놀라게 된다.
 
이날 기공식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두견주를 권하며 말한다.
 
“이제 당진시립박물관이 면천에 들어서유. 먹고살기 바빠서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을 전부 훼손한 게 가슴 아파유. 지역발전을 떠나서 제 생전에 옛 모습이라도 살려내면 그걸루 족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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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를 복사해서 여기 올립니다. 너무너무 반가운 낭보이기에 우리 교구의 모든 분들께서 아셨으면 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오마이뉴스에 직접 들어가셔서 보도된 사진과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가 컴퓨터 실력 없어서 사진을 여기에 올릴 수 없습니다.
 
이 소식이 낭보인 이유를 조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면천은 우리 교회사적으로 성지입니다. 거기서 순교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이신 김진후(비오)선생께서 면천군수(현감)로 재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고위 관직에 계셨던 분이신데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어 패가망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관직을 삭탈당하신 후 체포되어 모진 고문 받으시고 해미진영에 갇혀서 10년동안 옥살이 하시고 순교하셨습니다. 해미에서 옥살이하시던 중에는 그분의 고매한 품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했고, 옥중에서 오히려 관리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김진후(비오) 선생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점을 참작하여, 저는 김대건 신부님 가문이 면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가 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더욱 면천면의 송산리는 그 명칭상 '솔뫼'를 뜻합니다. 아마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 '솔뫼'가 면천의 송산리에 해당되지 않은까 하는 개연성에 저의 마음이 닿고 있습니다. 김진후 선생의 아드님과 손자(김대건 신부님의 조부와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에 이르도록 아마도 3-4대의 가계를 이루는 가족들이 면천에 거주하시다가 증손이신 김대건 신부님께서 거기서 출생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면천이 성지로 선포되어야 할 지극히 당연한 끼닭은 그 읍성의 서문밖과 성내 감옥터를 우리 교회가 주시하여 그곳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기에 그렇습니다. 그 성내의 감옥터는 면천 초등학교 숙직실로 사용하던 곳이라는 증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문밖은 실제로 죄수를 끌어내어 사형을 집행했을 수도 있고 거기서 다른 곳으로(아마 지금의 원동 저수지 쪽으로) 끌고 가서 사형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옛 고을의 성곽을 관찰할 때, 서문은 우리 천주교의 순교사와 관련될 개연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그 까닭은, "서쪽으로" 죄수를 끌고 나가고 거기서 처치하던 것이 관행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서쪽 문'이 왜 그런 관행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게시판에서 제가 길게 설명할 수가 없네요. 다만 참고적으로, 해미진영의 서문밖 순교지의 사연과 연관지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혹 해미에 순례가시는 분들께서는 벌판의 생매장 순교지만 보시지 말고 서문밖 순교지를 꼭 들르셔서 거기 순교현양비 뒤쪽에 새겨진 서문밖 사연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면천 지역을 지나가게 되면 꼭 면천 서문밖(버스 정류장)에서 잠깐이라도 순교 선열들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짧은 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간혹 기회 있을 때마다 면천이 중요한 순교지임을 강조해왔습니다만, 누구 하나 귀기울여 들어주시질 않더군요. 그런 중에 이번에 당진시에서 면천 읍성복원작업을 개시했다는 뉴스를 들으니 너무너무 반가운 소식입니다만, 당진시 당국의 복원 프로젝트란 역사,문화적 마인드로 기획되어 관광지화 할 목적이 아주 강하겠지요. 그 면천읍성이 관광지로서의 각광을 받기만 하지말고 우리 신앙 유산을 찾는 곳이 되도록(성지로서 순례지가 되도록) 우리 교구에서 당진시와 지역 민의를 깨우쳐주고, 교회로서도 어떤 기획에 나서야 한다고 저는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리 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교우님들께서 먼저 면천에 순례하시는 발걸음을 많이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자꾸 찾아와서 기도한다는 소문이 퍼져야 하는 것입니다. 옛 선조들의 피로써 적셔진 땅은 이미 성지(거룩한 땅)이지만, 그 땅은 오늘의 후손 신자들의 고단한 순례의 땀으로 계속 적셔지고 그 기도의 발걸음으로 다져져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할 땅인 것입니다. 그 가까운 성지들(솔뫼,합덕,해미)은 이미 잘 성역화 하여 순례자들의 편리한 방문지가 되고 있습니다만, 순례란 어디 잘 갖추어진 시설을 이용하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아직 성역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곳이라서 불편하지만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기도하러 찾는 오늘의 신앙인들의 발걸음으로 자꾸 다져지다보면 그곳이 곧 성지임을 세상사람들이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하여, 면천은 그 읍성과 더불어 그 일대가 모두 성지이고 특별히 서문밖과 감옥터는 피를 흘린 성지임을 우리 모두 인지해야 합니다. 마치 해미에서도 그 성지란 '생매장 순교지'뿐만이 아니라 '서문밖'과 '진영'(읍성) 전부와 '동네 일원'이 모두 성지임을 인지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면천! 우리의 귀중한 성지입니다!
 
11월 1일 '모든 성인의 날'에 당진시에서 면천읍성 복원의 역사를 선언한 것은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나 의미 있는 '대축일'과의 일치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성지인 '솔뫼'에 가면 김대건 신부님만 생각하는 게 순례의 관행이겠습니다만, 그 인근에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면천 성지'가 있음을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당진군이 먼저 알아보았는지!!??
 
하여튼, 면천! 우리의 귀중한 성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