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6903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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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원머리 순례지와 신평교회사 연구발표회

대전교구 신평성당(주임 황선영 신부)은 12월 9일(금) 오후 7시 30분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기진 박사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를 초청해 "당진 원머리 순례지와 신평교회사"라는 주제로 첫 신평원머리성지에 대한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당진지구장 이원순 신부를 비롯한 지구내 각 성당 및 성지 신부들과 전임 신평성당 주임인 정필국 신부 등 많은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성당 안을 가득 매워 이번 연구발표회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기진 박사의 "당진 원머리 순교사와 교회사의 의의"와 김정환 신부의 "신평지역의 공소사 연구"라는 두가지 주제로 진행된 이번 연구발표회에서 차기진 박사는 원머리 순교사의 지역적 배경에서 내포 지역사와 당진 원머리의 위치, 조선 후기의 홍주목과 원머리 지역사와 이존창 루도비꼬로 시작되는 내포 천주교회의 확대와 원머리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차기진 박사는 “‘사학징의’에 보면 1801년의 신유박해 때 면천의 이일선과 박유복, 김순재, 김만업 등이 유배형을 받은 것으로 나오며, ‘노상추의 일기’에 보면 현 부곡리 가는고지에 조춘산 등 조씨 일가와 현 한정리 원머리에 양남산, 최천돌 등 이 지역에 살다가 체포된 8명의 이름이 나온다”고 하고 “이 기록을 보더라도 1801년 이전에 이미 면천 지역에는 물론 홍주 현내면 언두리와 인근의 신북면 세곶리에도 천주 신앙이 전파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내포 천주교회가 설립되고, 그 신앙이 당진․면천․홍주 지역으로 확산되어 가던 1790년대에 홍주의 월경지인 현내면․신북면 지역 즉 지금의 당진 원머리․가는고지 등지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라고 했다. 

또 차교수는 1868년 수원에서 함께 순교한 박선진(마르코)과 박태진(마티아)의 시신은 같은 동네에 사는 서명삼에 의해 운구되어 원머리의 순교자 묘역에 묻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원머리(한정리)에서 신평성당으로 이장 되었다가 다시 신평성당에서 원머리로 이장되는 두 번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편의주의에 의한 성인유해 및 묘지 훼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다행히 유해를 항아리에 넣어서 이장한 덕에 유해의 홰손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며 원머리 순교자의 유해 이장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차기진 박사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어 “신평지역의 공소사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는 박해 이후 신앙자유기의 신평지역 교회사를 이야기하며 선교사들의 재입국과 사목방문 그리고 1890년 합덕본당의 설립까지의 과정을 설명 했다.

또 김 신부는 제국주의시대 일제강점기 시기에 원머리와 새터, 음섬이와 주변 공소들 등 신평지역의 공소들의 부활 과정과 신평성당의 설립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물을 쌓아 막아 간척지로 사용하기 위해 제방을 쌓은 곳의 끝 부분 즉 ‘제방머리’ 즉 ‘언두리’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새 간척지로 형성된 ‘신원들’의 머리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