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312
  • 글쓴이 : 이요안
  • 작성일 : 2006/11/19
  • 조회수 : 4,459

평신도주일 강론-산성동본당 이동영 바오로 총회장님

오소서 성령님

  오소서 성령님! 

  오늘 평신도주일을 맞아 저에게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과 주임신부님 그리고 교우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산성동본당 공동체가 설정된 지 벌써 14년이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는 12월 3일이면 우리 모두가 꿈에 그리던 성당봉헌식을 갖게 됩니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본당 공동체의 피와 땀, 아픔과 상처, 그리고 한숨까지도 너그러이 받아 주신 주님의 보살핌과 은총이 이룬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 감사하고 여러분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정말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마태오복음 13장 2절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 본당 공동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는 듯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인이 되시고 그 구성원인 성직자와 평신도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것이라며 평신도 사도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또 우리 선조들은 평신도 신분으로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한동안 평신도들만으로 교회를 전파하며 목숨을 바쳐가며  평신도 사제직을 훌륭히 수행하였고, 복음을 온 겨레에게 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본당 공동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공동체 운동은 어찌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우리 신앙 선조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신앙 전통을 오늘에 이어받아 되살리고자 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한 이후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일들이 우리 본당 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해 배론 성지 순례에 600 여명에 가까운 분들이 참여했던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성전건립 초기 200여 세대에 불과하던 성전건립기금 신립 세대수가 금번 성전 마무리공사를 하면서 400세대가 넘었고 특히 십일조를 봉헌한 세대가 대부분이었던 점은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응집력이 토대가 돼 곧바로 지난 부활절에 성전건립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소공동체운동을 도입하면서 심화된 것이 표면화 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런 신심 깊고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겁고 기쁘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갈 길은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을 도입하여 시행하며  많은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왔음도 사실이지만  너무도 미약한 점이 많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신앙은 미사 참례와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면 족하다 여기고  현실의 삶 속에서 신앙적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 평신도들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교회를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31.7%가 신자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실망이라고 답해 삶과 신앙에 큰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나서서 그들의 삶의 자리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보여 주어야만이 이 세상 속에서 성사인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누룩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은 성경 말씀을 따라 살 때 가능합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 복음나누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방식이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 안에서 살며 이웃과 함께 나누고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느님의 성사임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이제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 말씀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나누고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삶이 신앙이고 신앙이 삶인 천국 같은 공동체를 이 땅에 건설하는데 우리 함께 앞장섭시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본당 공동체 신자들과 또 이 지역 사회 주민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 생명까지도 내어 주시는 나눔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나눔을 제하고는 어찌 보면 신앙을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력 나의 의지 소유한 이 모든 것을 주여 당신께 드리리이다. 이 모든 것 되돌려 드리오리다". 라고 매 미사 때마다 봉헌성가를 부릅니다. 하지만 하느님 대전에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는 고사하고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방식에 의한 물질적 나눔의 기본 원리라 할 수 있는 십일조 헌금에 대해서 잘 실천하고 있는지 자성해 볼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소유한 열개 모두가 원래 하느님 자신의 것인데 그 중 아홉 개는 우리가 쓰게 하시고 한개만 바치랍니다. 이 얼마나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십니까. 우리 인간 같으면 원래 내 소유니 열 개 모두를 내 놓으라 할 텐데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과 교회, 그리고 이웃을 위한 나눔, 특히 물질적 나눔에 인색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물질적 나눔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 내어주신 예수님의 나눔에 비할 데 없는 미약한 나눔에 불과하다는 것을 늘 죄송스럽게 여기고 사는 겸손한 사람일 테니까요.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구체적인 물질적 나눔을 통해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2장 33절, 34절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슬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고 하셨고, 마태오 복음 12장 43절, 44절에서는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두 말씀을 끝으로 우리의 나눔과 헌금생활을 잠시 묵상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