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541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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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경교구장 주교님과 사제단 대전교구 방문-01

중국 천주교 남경교구의 교구장 루신핑(陸新平-陆新平)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님을 비롯한 7명의 사제단이 사제성소와 신자들의 선교를 포함 대전교구의 선진화된 교구운영 방식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지난 6월 13일(월)부터 18일(토)까지 5박 6일간 대전교구를 방문해 교구 내 여러 시설을 둘러보았고 16일(목) 대전교구청을 방문,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과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을 예방 후 교구청 내 각국을 방문해 교구운영 현황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들었다.
 
대전교구장 유 주교님은 루신핑 주교님과 사제단을 환영하면서 “김 신부님이 남경에서 사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김 신부님을 통해서 귀하고 아름다운 하느님 안에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귀한자리가 마련되었다.”라며 “몇 년 전부터 주교님 뜻을 알고 실현되기를 바랐는데 드디어 방한이 이루어졌다.”며 방문을 축하했다.
또 유 주교님은 “오시는 월요일부터 타 교구 주교님들과 회의가 있어서 공항과 숙소인 정하상교육회관에 가지 못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항상 김윤석 신부님과 이재훈 비서실장 신부님을 통해서 방문지의 소식을 접하며 항상 방문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대리 김종수 주교님을 소개하며 “교구청에 계신 신부님들과 직원들, 대전교구 모든 분들과 함께 주교님과 사제단의 방문을 환영하며 남경교구와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해서 좋은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루신핑 주교님은 유 주교님께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고 “가는 곳곳 주교님이 어떻게 관심을 가지시며 신부님들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동행한 신부님들과 느낄 수 있었다.”라며 “교구 관리와 교구에서 하는 모든 것, 비록 며칠되지 않았지만 배운 것이 너무 많고 지금 대전교구는 마치 8시, 9시의 해와 같고 앞으로 계속 교회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풍성해질 것이다.”라고 하고 “대전교구의 여러 시설을 둘러보는 동안 중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하며 발전된 한국과 대전교구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루신핑(陸新平-陆新平) 주교님 일행은 지난 13일 성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와 합덕성당, 신리를 둘러보며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서천 어메니티복지마을을 방문해 운영이념과 현황 등을 설명 받은 후 시설을 둘러보았고 저녁에 전의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저녁미사를 봉헌했다. 셋째 날인 15일에는 대전 대흥동에 위치한 대흥동 주교좌성당을 방문해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 후 대전성모병원과 성모초교, 성모여고를 각각 방문하고 운영이념과 현황 등을 설명 받고 시설을 둘러보았다.
 
또 16일 오전에 대전교구청을 방문 교구운영에 대한 전반적 설명과 각 부서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서별 설명을 청취했다. 이어 오후에는 초중고등부와 청년들을 사목하는 청소년사목국과 교구 내 복지사업을 전담하는 사회사목국, 다문화가정의 사목을 담당하는 이주사목부의 모이세와 가정폭력 상담과 여성 긴급 피난 시설인 1366을 방문해 설명을 들었고 이어 ‘한끼 100원 나눔 운동 본부’를 방문하여 이 운동의 취지를 설명 듣고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번에 방문한 중국 남경교구는 교구 면적이 남한정도 크기지만 사제(주교님 포함)수가 19명 정도 되는 상황에서 대전교구의 사제양성 시스템과 사회복지사업 등 각종 소식을 접한 후, 가까운 미래에 사제들이 더 배출되고 교구의 규모가 성장 되었을 경우를 대비하고자 몇 년 전부터 대전교구의 방문을 희망했고, 이 소식을 접한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님도 중국 사제단의 방한을 위해 노력하셨다. 종교인사의 외국 출입이 쉽지 않은 특히 주교님과 같은 종교지도자의 외국 방문은 쉽지 않은 중국의 현실에서 양 교구의 노력으로 허락을 얻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남경교구의 대전교구 방문은 17일 서울 명동성당 방문과 남대문시장, 경복궁 방문 등으로 끝이 나지만 양 교구 소통의 물꼬를 터주고,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가 협력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