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6642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8/07/11
  • 조회수 : 6,766

[공지] 교구 설정 60 주년 도보성지순례 체험공모전 수상작

교구 설정 60 주년 도보성지순례 체험공모전 수상작 발표

심사 : 대전가톨릭 문학회

☆★ 축하드립니다. ★☆        사랑상 : 김정연 안나 / 천안신방동
  산문 / 제목 이름 본당 시 / 제목 이름 본당
기쁨상 나의 발소리 육슬지
/미카엘라
문창동 바람속에 주님 박남희
/나탈리아
궁동
평화상 천년 같은 하루에 감사하며 김편도
/카타리나
천안
봉명동
그대 핏빛은 이은숙
/젤뚜르다
삼성동
인내상 당신의 빛으로 빛을 보옵니다. 김경옥
/마리아
대사동 당신 부르심에 정완영
/마태오
도마동
한티 고개를 넘으며 최창숙
/데레사
태안 비처럼 강물처럼 박민식
/바오로
당진
진실상 도보성지순례를 하고나서 허수찬
/미카엘
송촌동 도보성지순례 이연우
/글라라
천안
두정동
믿음의 성장에 밑거름 된... 임호빈
/요셉
공주
신관동
오색 묵주의 축제 이복남
/베로니카
천안
쌍용동
온유상 앞서 걷는 자, 바로 걸어라 김종연
/라파엘
대흥동 님들의 하얀 순교를 본받아 배경숙
/마리아
가양동
기억하여 행하여라 김혜정
/안젤라
탄방동 하느님 나라를 걸었네 정영숙
/세실리아
장항
특별상 60주년 도보성지순례 여덟 번째 박근수
/모이세
모산      

총 115 분이 소중한 작품을 내 주셨고, 심사는 대전가톨릭 문학회의 열 분 회원님들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공모전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usb메모리와 유 라자로 주교님께서 강복하신 묵주를 드리오니, 참가하신 모든 분들께서는 혹시 회원 가입을 안하셨으면 가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주소지로 상품이 정확하게 배달 됩니다. 감사합니다.

시    상 : 교구장 유 라자로 주교님
시 상 일 : 2008년 07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장    소 : 천주교 대전교구청 대회의실
문    의 : 홍보국 042)630-7751~2

 

사랑상 수상작 - [천주께 감사!]

참으로 아름다운 기적을 이루기 위하여. 나는 올해로 일흔이다.

지난 단오날( 양력 6월 8일 )이 생일이 었으니 정확히는 이제 일흔을 넘겼다. 나이는 숫자일 뿐,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굳이 나이를 밝히며 글을 시작하는 까닭은 여덟 차례의 성지순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육체의 기운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일흔의 나이에 다소 무모하다 싶었지만, 8회에 걸친 교구 성지 순례에 모두 참여했다. 단 한 걸음도 누구에게 업히거나 구급차에 의지하지 않았다. 성지순례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의에 가려 주변 사람들과 행사진행에 폐를 끼친다면 참으로 민망할 일이었으나, 아무 탈 없이 완주할 수 있었으니, 이는 쇠락한 노구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루어졌다."( 요한 19,30 )고 밖에 달리 표현할 언어를 찾아내지 못하겠다.

8회에 걸친 성지순례에 참여하고자 했던 동기도 간단했다. 첫째는 전대사를 얻어 두 명의 사제와 살아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여섯 명의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그분들에게 나눌 것을 만들기 위한 지난 순례는 그지없이 정성을 다한 애가 타는시간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선한 지향으로 죽은 이들의 죄와 벌이 사해진다는 우리의 믿음은 아름다운 기적이다. 먼저 가신 그분들을 떠올리면서 두런두런 옛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 시간내내, 이분들이 살고 있는 곳이 먼 하늘나라이기 보다는, 아트막한 산 두어개 너머에 있는 이웃마을 같은 느낌을 줄곧 지울 수 없었다.

애초의 이 결심이 흔들린적이 단 한 번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성거산 성지 미사 중에 전대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 갑자기 '여덟 번 증에서 한 번은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하는 욕심이 파도처럼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제 무슨 욕심이 남았겠나 하면서 지내지만, 변덕스런 마음을 또 보았다. 이를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여덟번 모두를 맨 처음 지향대로 봉헌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를일이지만.

둘째는 순교자들이 발소리를 죽이면서 걸었을 그 길을 따라 걸어보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그분들의 수고와 열정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소박하게나마 앞서 간 순교자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음으로써, 그분들이 남기신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우리의 후손에게 남아있게 될 것이다, 순례길에 참여하고자 결심을 할 때부터 힘겨운 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순례길마다 그 길의 끝에는 늘 성지와 신앙의 유산이 있었으므로, 절친했던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행복 감에 취해, 그 곁을 걸을 수 있었다.

고통 없이 영광 없다.

내 발톱은 2회 순례까지는 특이한 이상이 없었다. 발톱 밀으로, 옆으로 피가 비치고 때로는 더껑이를 이뤄 엉켜있기는 했었다. 오랜만에 긴 시간을 걸었으니 그 정도의 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있다. 발톱이 때로는 흔들바위처럼 흔들거렸고, 피가 둥친 발톱이 밤에 잠을 설칠 만큼 아플 때도 있었지만, 통증을 느끼는 부위가 발톱 만은 아니었으므로, 별 것 아니려니 했다. 더욱이 깜짝 놀라 잠이 깰 때마다 온몸이 흥건하게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허리와 무릎, 종아리도 발톱 못지않게 아팠으므로,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3차 순례 때인, 솔뫼 성지에서 여사 울까지 걸을 때는 발톱이 빠지는 것처럼 심하게 아팠다. 나는 그날은 의도적으로 운동화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 순례 증에 운동화를 벗고 발가락을 본다면 순례 길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운동화를 벗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운동화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서 고통스럽게 신발을 벗었다. 운동화와 양말 사이에 피가 엉겨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독약을 바르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오랜 시간의 사투 끝에 간신히 양말을 벗었을 때, 발톱 세 개는 이미 빠져 양말안에서 뒹굴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애초에 인연 다한 사이 처럼 따로 놓고 있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나자, 나머지 발톱도 모두 달아나, 발가락 열 개에 단 하나의 발톱도 남아있지 않았다.순교자들은 짚신을 신고 고갯길을 넘었을 것이다. 나는 인체공학적으로 제조된 최고급 운동화를 신고도 발톱이 모두 빠졌다. 정리된 도로를 걸었을 리가 없는 순교자들의 발은 어떠했을까? 그분들의 발가락은 돌부리에 채이고, 질긴 들풀에 찢겼을 것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오랜 시간을 인적없는 산 속에서 헤매기도 했을, 그분들의 발은 매일 부어있고 접질려 있었으리라. 노숙에 대한 두려움과 약속된 장소에 제 때에 도착하려는 그분들에게 노면을 살피며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리가 없다. 밤이슬을 마시러 나은 뱀을 보고 놀라 풀숲으로 피하기도 했을 것이며 산짐승의, 울음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져 발소리를 죽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발과 발톱은 온전했을까를 묵상하게 되는 것은 역시 내 발이, 내 발가락이 모두 깨지고 갈라지고 난 다음에야 현실감있게 다가왔다.나 대신 그리스도께서 걸으셨습니다.다음 성지순례는 정확히 20일 후에 청양 다락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번 순례길 중 가장 고통스런 길이었다. 순례길을 소개해놓은 자료에 의하더라도 가장 먼 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0개의 발톱이 모두 달아나서, 단 하나의 발톱도 없이 걸어간 길이기도 했다.

그날 오전 중에 만나게 된 오르막 고갯길의 저항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육신은 급격히 지쳤다.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발이 길에 붙었다. 길은 고집스럽고 끈질기게 내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더 이상 걷는다는 것은 교만이었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생각되었다. 진정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한계였다. 여기서 포기하고 주져앉아도 아무도 나무랄 것 같지 않았다. 애초의 결심은 결심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것이었다. 한계를 알고 멈추는 것도 겸손이었다.그때 땅만 바라보았다. 땅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내가 봉헌하기로 한 전대사는 오늘로 마감이다. 얻지 못하면 주지도 못하는 까닭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주님, 그만두어야 합니까? 주님깨서 허락하신 시간은 여기까지 입니까?'


행사보조차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도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차를 타시 지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속에서 활화산처럼 뜨거운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갑작스럽게 마른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뜨거운 덩어리가 기도를 막았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힘도 없었다.그 눈물을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었다. 머리를 더 깊이 숙였다. 기쁨의 눈물인가? 슬픔의 눈물인가? 한계의 눈물인가? 실패의 눈물인가? 희망의 눈물인가? 안도의 눈물인가? 하느님께서 이 길에 나를 버리셨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빼앗아가셨다. 단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도록 만드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길을 마련해놓고 나를 버렸다. 하느님께서는 더 큰 힘을 주시기 위하여 수중의 모든 걸 수거해 가셨다. 하느님께서는 내 지향이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그걸 포기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느끼도록 하기 위해 나를 버리셨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순수한 지향만을 거둬들이기 위하여 나를 외면하셨다.

이후는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걷게 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대신 걷고 계셨다.당시에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의지와 능력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불잡히고, 갇히고, 얻어맞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시다. 칼을 받고, 순교할 수 있는 영광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루어낼 수가 없다.바오로 사도께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2,20 ) 하신 말씀처럼 시시각각에 그리스도께서 순교자들과 함께 계셨기에 가능했다. 그리스도께서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신자들과 함께 공포를 체험하섰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셨고, 함께 감옥에 갇히셨으며, 참혹하게 얻어 맞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칼을 받으셨고 그분들과 함께 숨을 거두셨다.

그리스도깨서 순교자들과 함께 그분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에 함께 하셨으므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천주께 감사!

이후 5회부터 마지막과 지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을 모두바쳤다. 내가 올린 기도와 땀방울이 정념 앞서간 분들에게 보탬이 되기를 기도하며 또 그러리라고 믿는다.

순례길을 모두 끝낸 지금 발가락 끝이 간지럽다. 숲의 봄날 새싹이 돋을 때 나무 들이 느끼는 감각이 이럴 것이다.

새끼발가락에서는 새 발톱이 나왔고, 나머지 발가락에서도 봄날의 숲처럼 움이 트려고 꿈틀덴다. 봄날의 새잎처럼 머뭇거리며 신나하기도 하며, 앞을 다투기도 서로 밀치기도 하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70년 정도 사는 것으로 알려진 독수리는 40년쯤 살고 나면 부리와 발톱이 가슴 쪽으로 굽어 먹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단다. 그때 독수리는 홀로 바위로 날아올라가 자신의 부리를 바위에 짓이겨 부리를 뽑아버린다 한다. 이후 새로운 부리가 나게 되면 새로 난 부리로 발톱을 뽑고, 낡고 힘없는 깃털을 제거해버린다 한다. 다시 6개월 정도가 지나면 새로운 깃털과 새로운 발톱이 나는데 이때부터 독수리는 제2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새로 살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육체의 병을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언은 감격스럽다. 이 세상에서의 영적인 재탄생도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리를 가지고 발톱을 뽑는 독수리의 과단성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먼저 가신 분들에게 진정 새로운 삶이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분들에게 돌아갈 전대사도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부리를 뽑아버리는 의지와 지치지 않는 사랑이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순례는 끝났다. 아니 또 시작이다. 하느님께서는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길을 만드신 분은 길을 걸을 수 있는 힘도 주신다고 믿는다. 그 힘은 그분만이 주실 수 있으므로 그분만을 의지해야 한다.

그 길을 변경할 수도 없다. 하느님 없이 걷는 길은 힘겹고, 사람을 잃은 하느님은 안타깝다. 나에게 허락된 이 세상 순례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마지막 그날까지, 허락된 길을 감사하며, 인내하며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