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성모승천 대축일 담화문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 50)
1. “원죄가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현세 생활을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밝히고 이를 선포하는 바이다.”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교황 비오 12세께서 이와 같이 성모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승천 교의를 처음 선포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 개인의 영광이자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인 승천을 재차 확인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님의 승천과 구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서 당신 스스로의 힘에 의해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께서는 예수님 구원의 은총에 힘입어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1854년 선포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교의에 근거합니다. 곧 죽음은 죄의 결과인데, 마리아께서는 어머니 안나의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전혀 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가르침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에 관해서는 8세기경부터 교회 내에서 공적으로 언급되었지만 순교자나 성인의 사망일을 기렸던 관습대로 초기교회부터 전해져 왔습니다. 이렇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오래된 공경은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사업의 결정적 순간에 그분이 행한 역할과 성덕에 근거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순간부터 성덕으로 충만하셨으나, 성부의 뜻을 받들어 고통의 길을 가시면서(루카 2,34-35.41-52; 요한 19,25-27)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뜻만을 행하시며 항구한 삶을 사셨습니다.
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대전교구는 1948년에 설립되어 올해 은혜로운 교구설정 60주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전교구가 설정되면서부터 프랑스 산골 마을 루르드에 발현하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우리 지역에서 사목하시던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이 주신 선물인데, 더욱 은혜롭게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성모 마리아께서 루르드에 발현하신 150주년인 올해에 전대사의 은총을 허락하신 바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프랑스 산골의 루르드에 처음 나타나신 때는 하느님께 대한 불신이 만연하던 혼란스런 시기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을 대표하던 수학자 꼬시는 “신앙의 절대적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물질만이 존재할 뿐이며 이성만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종교와 신앙은 인간의 정신을 해칠 뿐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신론적 기운이 성행했습니다. 이런 불신의 시기에 발현하신 분이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러나 막상 그분이 선택한 사람은 가난하고 병약하며 나이 열 네살이 되도록 교리문답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산골 소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였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가장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베르나데트의 입을 통하여 “통회하라, 통회하라!”고 외침으로써 당시 세계의 죄악을 지적하시면서 보속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이의 구원을 애타게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인류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3.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민족해방의 벅찬 감격과 함께 분단 조국이라는 쓰라린 아픔을 되새기며 우리 민족의 고난을 묵상하게 됩니다. 광복절이 성모 승천 대축일과 같은 날이기에 시대적 아픔을 믿음으로 극복한 나자렛의 시골 처녀 마리아의 삶과 기도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습니다. 인간의 모든 사건과 역사는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지지만 그 완성은 인간의 노력과 협력으로 가능해 진다는 신앙적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아픔과 모순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새롭게 도래할 하느님 나라와 정의를 간절히 외치는 마리아의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0-53).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인간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웃 사랑이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마리아께서 거부한 교만한 자, 통치자, 부유한 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짓된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 곧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언론인과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찾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참된 신앙인은 세상의 권세에 휘둘리지 않고, 무력으로 남을 억압하지도 않으며, 불의하게 자신만의 이익을 성취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약하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먼저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4.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은혜로운 교구설정 60주년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그동안 성모 마리아를 닮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이 되고, 교구 공동체가 되기 위해 내적 쇄신과 외적인 체험의 장을 함께 해 왔습니다. 도보성지순례의 길 위에서, 순교성인들이 잠드신 성지의 문화피정 안에서 만나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린 기억은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몸짓을 하느님께서 좋은 열매로 갚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기보다 항구하고 겸손하게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렀던 성모 마리아처럼 스스로를 성찰하는 가운데 특별히 어려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기 위한 “한 끼에 100원 나눔 운동”(1313 운동)이 더 큰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10월 12일에 봉헌할 교구설정 60주년 감사미사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은총의 시점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처럼 우리가 불신과 죄악과 분열로 얼룩진 시대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앞장서도록 합시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이사 61,1) 환경을 살립시다. 특히 남과 북으로 분열된 조국이 화해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큰 관심으로 지켜보면서 기도하고 협력하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전인적인 치유를 청하며, 우리 마음과 삶의 자리를 성모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루르드와 같은 성지로 만들어 갑시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께서 부르셨던 구원의 노래가 기쁨이 되어 이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합시다.
고맙습니다.
200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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