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3725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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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교구장 주교님의 신앙의 해 폐막 미사 강론

오소서 성령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며, 은혜로운 “신앙의 해‘를 폐막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교회는 “신앙의 해”를 폐막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지난해 10월 11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하여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라는 복음 말씀을 주제로 정하시고 지금 교회는 세속주의, 상대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의 세상 조류를 우려하시면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해”를 선포한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에 대한 신앙의 아름다움’에 대해 온 교회의 관심을 갖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바탕을 둘 때, 그 온전함과 모든 광채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해”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나는 한 사건, 한 사람,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신앙의 해는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교회와 함께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성찬례 안에서 주님을 기념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을 증언하여,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우리에게 ‘오늘의 시대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믿음의 문」, 5항)과 가톨릭 신앙의 근본 내용을 담고 있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이해를 위한 노력을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님은 “신앙의 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에 맞추어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교구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다양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먼저 각 본당에서 “신앙의 해” 개막미사 때 성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톨릭교회 교리서, 빵과 포도주, 빈 바구니를 봉헌하면서 “신앙의 해”를 충실히 지낼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교구 차원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대전과 천안지역에서 ‘신앙의 해 특강’을 5차례 실시하였습니다. 사제들 역시 이 “신앙의 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자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신앙의 해 1일 연수와 ‘신앙의 해 사제단 도보성지순례’를 실시하였습니다. 그 밖에도 각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특강, 피정, 교육, 성지순례, 성경공부, 성경쓰기 등을 통해 이 “신앙의 해”를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해”를 이런 노력들을 하였지만 신앙은 결코 단 한 순간에 튼튼해지고 깊어질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님께서는 “신앙은 우리의 평생 동반자이며, 믿음은 믿음으로써만 강해집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 “신앙의 해”는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막을 내리지만 우리 신앙 여정은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 동반자인 신앙과 함께 우리의 삶을 가꾸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지난 2월 28일에 사임하셨습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이셨던 베르골리오 추기경님을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새 교황님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철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라고 교황직무 사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신앙, 위대한 용기, 최고의 겸손이 드러납니다.

베네딕토 교황님의 사임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출을 보면서 성령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고, 교회를 이끌고 계심을 깊이 느끼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이 “종들의 종”(Servus servorum)임을 교회는 물론이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가까이 할 수 있고, 어려운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모습은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Civilta’ Cattolica」(가톨릭 문명)이라는 잡지와 6시간을 인터뷰하셨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 기사를 매우 감명 깊게 묵상하며 읽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회가 신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상처 입은 이들을 가까운 이웃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종종 작은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는 가장 중요한 일이고, 교회의 사목은 신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비의 직무이어야 합니다. “어머니 교회, 목자의 교회를 꿈꿉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아픈 이의 상처를 씻어주고 싸매주는 역할이 바로 순수한 복음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고, 어두움의 길을 함께 가는 목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어떤 죄보다도 더 큽니다.

 

오늘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보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의 왕이시고, 우리 공동체의 왕이시며, 교회의 왕이시고,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십니다. “네가 유다인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하고 놀렸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를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신데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왕, 임금은 황홀한 어의를 입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입은 옷마저도 다 벗겨지고 중요한 부분만 가려져 알몸이 되셨습니다.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왕께서 인간으로부터 조롱을 당하심을 사랑의 신비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가장 큰 죄인으로 몰리는 수모도 겪도록 하셨습니다.

방금 들은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39-43 참조) 오른쪽에 있던 사형수는 죽기 30분 또는 1시간 전에 회개하여 천국을 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전에는 지각이 없습니다. 시작하면 빠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용서해 주시는 결코 지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그 어떤 죄나 악보다도 더 큽니다.

인간은 누구나 매일 자기 자신만이 지어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르듯이 주어지는 십자가도 서로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때와 장소에 따라 십자가의 크기는 다릅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의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십자가를 사랑한 사람만이 참된 행복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십자가를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성인은 자신에게 닥친 십자가를 끝까지 사랑한 분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물론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면서 고통을 나누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음과 부활의 신앙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부활에 도달합니다. 땀 흘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어떤 좋은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결실을 위하여 땀 흘리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십자가와 고통을 통하여 부활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통은 우리가 매일 겪어야 하는 일상의 양식입니다. 자기 자신을 끊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기 위하여 자신을 끊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매일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있습니다. 나 혼자 지면 무겁지만 예수님과 함께 지면 가벼워집니다.

많은 이들이 고통, 우환, 어려움과 함께 십자가 밑에 까지는 갑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죽음과 함께 부활이 올 텐데 부활을 보지 못하고 달아나 버립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맡겨드리면 부활을 체험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29) 나 혼자나 하느님과 함께 하느냐의 선택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면 항상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2,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이번 주일은 한국천주교회에서 정한 성서주간입니다. 성당에 들어오는 입구에서 주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삶 속에서 움직이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큰 글자와 함께 밑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 17,28)라는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특별히 생활에 옮겨야 합니다. “성서를 모르면, 예수님을 모릅니다.” 말씀을 살 때에 우리는 사람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굳인 신앙심을 갖고 싶다고 비결을 저에게 묻습니다.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소망을 피력합니다. 비결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말씀과 가까이 하면 됩니다. 아니 말씀과 함께 삶을 살면 됩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다 빠져 나갑니다. 그러나 콩나물을 계속 자랍니다. 늘 말씀과 함께 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늘 함께 하는 삶의 살 때에 닥치는 어려움, 고통, 십자가를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이 말씀 한 구절을 간직하고 살도록 합니다. 늘 나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19-20).

대전교구에서는 “신앙의 해”를 끝내면서, 신앙의 해의 영성을 계승 발전시키는 믿음을 튼튼하게 다질 수 있도록 대림절과 함께 새해를 맞으면서 “예루살렘 성경공부(마태오 복음)”을 발행하였습니다.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모두가 성경 공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명실 공히 나의 왕이시고, 우리 가정의 왕이시며, 우리 본당, 우리 교구, 우리 교회의 왕이 되시도록 합니다. 은혜로운 신앙의 해가 계속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