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09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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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사제 서품 소감문

"양희창 세례자요한"
[내동성당 1.25(목) 오후 7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돌이켜보면 발자국 마다 은총이었다.”라는 말처럼, 그간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일들 뿐이었습니다. 특히 건강을 잃었을 때 주님께서 새롭게 오장육부를 지어주시며, 당신 안에서 새로 태어났음을 가르쳐 주셨을 때, 저는 생명의 주인이 주님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으로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2코린 12,9)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고백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다시 한 번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맡겨드리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온 마음과 목숨과 정신, 그리고 힘을 다해서”(마르 12,30) 주님을 사랑하는 것뿐이기에, 일생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또한 주님의 손길로 돌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새 생명을 사제직에 바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유창연 사도요한"
[천안신부동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립 2,5)

너무나도 부족한 저를 주님의 거룩한 사제직으로 불러주시고 허락하여 주심에 하느님과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제직을 준비하며 사제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이 묵상 안에서 저는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사랑하셨던 그 마음을 품고 평생을 주님의 사제로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매순간 사목활동에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온전히 예수님께서 채워주심을 청하고 매일을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겠습니다. 항상 주님 보시기에 좋은 사제되도록 많은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저를 위하여 7년 동안 가르쳐 주신 교수 신부님들과 많은 기도를 해주신 본당 신자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최선종 사무엘"
[대동성당 1.25(목) 오후 7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태6,10)

주님께서는 당신의 삶 자체를 ‘주님의 기도’에 온전히 담아 알려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아버지의 품안에서처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희망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강생하신 예수님께서는 몸소 굶주린 이들의 빵이 되셨고, 병든 이들에게는 약과 생명이 되셨습니다.
강생하신 주님을 통해 하늘이 이 땅위에 내려왔고,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늘과 땅이 결합되었으며, 빵이 되시어 하늘과 땅과 인간이 결합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바치신 기도이자 그분 삶이었습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분을 닮아야만 합니다. 유일한 스승이시요 모범이신 주님을 떠나서 제 사제직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주님만을 닮고 따르기를 청합니다. 일생을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사셨던 것처럼, 제 안에서, 저를 통해, 저로부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유정의 바오로"
[천안신부동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들어라”(마르 12, 29)

저는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며, “들어라”(마르 12, 29) 라는 짧고도 소박한 성경 구절을 마음에 품고 사제의 직무를 기쁘게 행하려 합니다. ‘들음’은 하느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고자 희망하는 이들의 근본적 자세이며 행위입니다. 참된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곧, 하느님께로 온전히 향하는 삶의 방식이요, 그분께 일치하려는 사제직에 기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기울여 잘 들어야만 ‘참된 소리’와 ‘헛된 소리’를 구별할 수 있고, 그 소리가 생명을 비추는 ‘말씀의 소리’인지 ‘공허한 울림’인지 분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나와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때만이 비로소 하느님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언제나 겸손히 듣는 자 되게 하소서!”


"조성준 안드레아"
[봉산동성당 1.25(목) 오후 7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부족한 종을 도구로 써주시는 하느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제 성구는 자신의 아들들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 죄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엘리가 사무엘에게 하느님께 응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엘리에게는 주님과 함께하지 못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이런 상황에 엘리는 자신의 제자인 사무엘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린 것을 듣게 됩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미움이나 시기의 감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자신의 현재의 상황보다 앞으로 사무엘로 하여금 올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기에 이 가르침 안에는 주님께로 향한 항구한 엘리 자신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긴 삶, 어떤 상황 안에서도 그분을 믿고 그분께 의지하는 삶, 그리고 그분을 끝없이 믿고 사랑하는 것, 제가 평생 살아갈 사제직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박종훈 안토니오"
[신평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

성경은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신앙의 조상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구원을 받습니다. 마침내 때가 찼을 때, 한 여인의 들음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자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들음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 ‘들음’은 구원의 시작이요, 전부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만을 사랑하라는 유언의 서두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제단 앞에 엎드려, 이 말씀대로 항상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제로서 수행하는 거룩한 직무를 통해서, 말씀 안에서, 그리고 만나는 모든 분들 안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만을 섬길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안성준 도미니코"
[갈마동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0)

먼저 너무나 부족하고 나약한 저를 사제직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아무리 제가 인간적인 노력을 다한다 해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제직을 수행하는데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사제직을 받는 저의 마음이 기쁘고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나고 두렵기도 합니다. 사제의 삶은 “내가 너의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는 말씀처럼 저의 노력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끌어져야 가능함을 압니다. 저는 그저 저의 나약함 안에서 당신의 강함이 드러나고, 저의 부족함 안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느님께 믿고 의지하여, 주님의 도우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신자 분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방익수 사도요한"
[관저동성당 1.25(목) 오후 7시 30분]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

주님의 제단에 한발 한발 나아가면서, 사제직은 저의 선택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이며, 제 자신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제로서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어머니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고 싶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하느님께 내맡기는 순명과 용기, 겸손과 신뢰,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의탁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를, 하느님의 충실한 종의 마음을 간절히 청해봅니다. 모든 것을 제 자유와 판단, 의지와 소유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위해 희생해 주신 많은 은인들께 감사하며, 한결같이 주님의 종으로서 살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김동겸 베드로"
[대사동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주님, 당신의 말씀은 제 발의 등불, 저의 길을 비추는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신학교에 살면서 가장 강하게 체험했었던 것은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물고, 삶의 모든 방향을 말씀에 맞추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과 제가 늘 당신의 말씀을 몸에 새기고, 제 자신이 말씀 자체가 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주님의 말씀만이 제 삶의 정배가 되었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할 때만이 저에게는 천국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말씀이 제가 앞으로 걸어가게 될 길에 등불이 되어주시고, 그 길을 비추어 주시는 참된 빛이 되어주시기를 바라며, 이 성경구절을 저의 서품성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철필로 말씀을 몸에 새기고, 말씀 자체가 되는 삶,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참된 사제로서의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조규석 레오"
[둔산동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2)

바오로 사도 당시의 코린토는 경제적으로도 번성한 곳이었고, 지혜롭다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리석고 무력해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오로 사도께서 바로 그 ‘십자가’가 진정한 사랑이고, 지혜이며, 힘이라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체험이 없었다면 바오로 사도는 아마 많이 가졌고, 지혜롭다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힘 있게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당신의 지혜나 말솜씨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또한 하느님의 힘을 바탕으로 전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분께서 해야 할 일을 하느님 안에서 시작하고, 하느님 안에서 마치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묵상하면서 저 역시 ‘십자가’가 담고 있는 사랑과 지혜와 힘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렇게 제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 안에서 시작하고, 하느님 안에서 마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최동일 베드로"
[정림동성당 1.25(목) 오후 7시]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크신 은총으로 부족한 제가 사제직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모든 은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제로서의 삶이란 어떤 전문 직업인이 아니라 가장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지난 10년간의 신학생 생활을 통해 배웠고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가장 큰 사랑이란 어떤 사랑인지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신 “벗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말로써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를 벗으로 끌어안으시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몸소 모범으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저 역시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써 드러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저의 사랑이 부족하다면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채워주시길 기도하고 의지하며 힘차게 사제직을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박주환 미카엘"
[조치원성당 1.25(목) 오전 10시 30분]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요한 16,27)

부족한 저를 거룩한 사제직에 불러주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 또한 한없이 두렵기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족함과 모난 점 때문에 꾸지람도 들었던 사도들은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요한 16, 27)는 유언과도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너희는 허점투성이고 모가 난 점도 많지만 이미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왔음을 믿기에, 바로 그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점투성이인 너희를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이다.”라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기서도 허점투성인 저에게 같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요한 16, 27) 사제로 살기에 부족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감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