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6490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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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26년 성모 승천 대축일 총대리 메시지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사도들의 모후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하늘의 영광으로 불림을 받으심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축일을 맞아,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성덕의 길을 걸으려 노력하는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풍성한 은총을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누리게 된 광복절을 맞아, 한반도와 온 세상에 참된 평화가 가득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이처럼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대축일에도, 오늘날 우리 주변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과 갈등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가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교구장 주교님의 이번 부활 메시지에서처럼, 분명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셨고, 우리 역시 그 평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중동에서 계속되는 전쟁과 더불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이나 국가 간의 갈등과 무력 충돌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며, 국제 사회는 불신 속에 더욱 분열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삶의 무거운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국제 사회 속에서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앙인으로서 정직과 사랑, 용서와 희생을 실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과연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물음 앞에서 저는 성모 승천 교의가 선포되던 역사적 상황을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성모님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뒤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늘의 영광에 들어 올려지셨다는 성모 승천 교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하나의 교리를 확정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짓밟힌 인간의 존엄성을 일으켜 세우고, 장차 이루어질 부활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온 세상에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초대 교회 때부터 자연스럽게 믿어 온 신앙의 진리였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이를 교의로 선포한 데에는 시대가 요구한 절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0세기 전반, 인류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수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도시와 문명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인간의 존엄성마저 처참히 짓밟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죽여야 했던 비극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깊은 절망과 상처가 남았습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인간에게 정말 희망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전쟁은 반복되었고, 사랑을 말해도 미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고, 신앙에 대한 회의 또한 깊어져 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과 남북분열,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연이어 겪으며 같은 절망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절망 속에서 교회는 세상에 희망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성모 승천 교의는 당장 눈에 보이는 죽음과 전쟁, 절망이 인간의 마지막 운명이 아니라는 신앙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간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마침내 몸과 영혼이 함께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희망을, 성모님을 통해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 준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으신 성모님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에서 낳으셔야 했습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어린 예수님을 데리고 이국 땅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공생활 동안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군중의 배척과 오해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셔야 했으며, 그 시신을 품에 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도 겪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성모님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응답처럼, 한평생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셨고, 영원한 생명의 영광으로 불림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성모 승천은 성모님 한 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영광을 기념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께 충실했던 이들의 삶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희망의 표지입니다. 물론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특별한 은총을 받으신 분이기에, 우리가 성모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늘에 들어 올려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복음을 실천한다면, 분명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영광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늘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은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려 노력하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정의가 외면받는 것처럼 보여도, 사랑과 용서, 희생과 봉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께 베푸셨던 것처럼, 당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기억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영광 안으로 불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또 신앙 안에서 애써 살아온 노력이 과연 하느님께 받아들여질지 두려워질 때마다 성모님의 승천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죽음과 절망의 어둠 속에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026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총대리 주교

 

 

한정현 스테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