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지난해 우리는 “희망 속에 기뻐하십시오.”(로마 12,12)라고 한 바오로 성인의 말을 성찰하며 대희년을 향한 희망의 길을 나섰습니다. 올해 우리는 2025년 희년 순례를 준비하며 이사야 예언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 40,31). 이는 이른바 위로의 책(이사 40-55장)에서 뽑은 말씀입니다. 이 위로의 책은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나고 하느님 백성에게 희망과 거듭남의 새 시대가 시작됨을 알립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위하여 지금도 열어 주고 계시는 새로운 ‘길’ 덕분에 하느님 백성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이사 40,3 참조).
1. 인생의 순례와 도전들
이사야 예언자는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걷는 것과 피곤한 것, 이 두 가지 측면에 대하여 이제 성찰해 봅시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의 순례입니다. 우리 자신을 넘어서도록 우리를 재촉하는 여정, 행복을 찾는 여정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의 구원이시고 모든 선의 충만이신 하느님을 향한 순례입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의 목표와 성취와 성공이 오직 물질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처음의 만족감 뒤에 여전히 공허하고 더 큰 무엇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우리 영혼을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한 분에게서 창조되었고, 그 결과 초월에 대한 내재적 갈망, 곧 더욱 큰 열망의 충족을 향하여, ‘더욱 많은 것’을 향하여 부단히 나아가려는 지속적인 원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는 것’으로는 젊은이 여러분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정을 지니고 여정에 나서더라도 머지않아 피곤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압박, 곧 학업과 일과 개인의 삶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압박으로 불안과 내적 피로가 생겨납니다. 이는 일종의 허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수많은 일로 채우지만 충분히 해낼 수 없고 기준에 못 미친다고 느끼게 만드는 공허한 ‘활동주의’ 속에서 우리가 숨 가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피곤은 권태를 수반합니다. 곧, 절대로 길을 나서지 않고 선택하거나 결정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지대에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며, 자기 안에 갇혀 거리를 두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며, 여러 문제와 타인 그리고 삶 그 자체 때문에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일이 없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무관심과 불만족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권태는 우리가 젖은 시멘트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결국 이 시멘트가 굳으면서 우리를 짓누르고 마비시키고 나아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망 없이 가만히 있는 이들의 권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피곤이 더 좋습니다!
2. 광야의 순례자들
인생의 순례길에서는 필연적으로 어려움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오랜 순례 여정을 걸어가려면 변화하는 계절과 기후에 적응하고 쾌적한 초원과 시원한 숲뿐만 아니라 눈 덮인 산과 메마른 사막도 건너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를 지나서 약속된 땅으로 가는 여정이 그러했듯이, 믿는 이들도 인생의 순례와 궁극적 목적을 향한 여정에서 피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선물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뿐만 아니라 광야를 체험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공부와 일에서, 혼인 생활이나 사제나 수도자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서 우리가 처음에 품었던 열정에는 삶을 광야의 힘든 여정처럼 보이게 만드는 위기의 순간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때는 허비되거나 무익한 시간이 아닙니다. 이러한 때는 중요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희망이 정화되는 순간들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많은 거짓된 ‘희망’, 곧 우리 마음에 너무 작은 희망들이 사라지고 그 정체가 드러나며 우리는 환상 없이 홀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저마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기초가 되는 희망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이 참된 희망들인가 아니면 그저 신기루일 뿐인가?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곁에 아버지처럼 다가오시어 우리 여정에 새 힘이 되는 빵을 계속해서 주십니다. 주님께서 광야에 있는 이들에게 만나를 주셨고(탈출 16장 참조), 지치고 낙심한 엘리야 예언자에게 두 번이나 빵과 물을 주시어 그가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게 하셨던 것을(1열왕 19,3-8 참조) 기억합시다. 이러한 성경 이야기에서 교회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에서 우리를 지탱하시려고 내려 주시는 참된 만나, 참된 양식인 성체성사라는 귀중한 선물의 예표를 신앙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복자가 이야기하였듯이, 성체성사는 하늘 나라로 가는 비단길입니다. 복자는 성체성사를 날마다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주님과 이루는 일치 안에서 우리는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마태 28,20 참조). 저는 이 위대한 성체성사의 선물을 재발견하도록 여러분 모두를 격려합니다!
3. 관광객에서 순례자로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사랑의 길을 따라 인생을 발견하고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에 나서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조언을 드립니다.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참된 순례자로 길을 나서십시오. 셀카를 찍으려고 몇몇 찰나의 순간에만 관심을 둘 뿐, 자신이 걸어가는 길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못 보는 피상적인 구경꾼처럼 되지 마십시오. 관광객들은 그렇게 합니다. 반면에 순례자들은 자신이 자리하는 곳에 온전히 몰입하고, 그 장소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행복과 충만을 추구하는 데에 도움을 받습니다. 희년 순례는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도록 우리 모두가 부름받은 내적 여정의 외적 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4. 사명을 위한 희망의 순례자들
저는 젊은이 여러분의 여정을 인도하는 더욱 효과적인 표상 하나를 전합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하는 이들은 유명한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세운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광장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주랑 전체는 양팔을 활짝 벌린 모양입니다. 이는 모든 자녀를 감싸 안는 우리 어머니인 교회의 표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희년 전통에서 그러하듯, 다가오는 희망의 성년에 여러분 모두가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을 경험하고, 우리의 모든 ‘내면의 빚’을 탕감해 주시는 하느님의 용서를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품에 안겨 그분 안에 거듭난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환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많은 친구와 동료를 양팔 벌려 껴안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미소, 우정의 작은 몸짓, 친절한 눈길, 기꺼이 귀 기울이는 경청, 선행을 베풀며 예수님의 영 안에서 이러한 행동들이 전해지는 이들에게 희망의 풍성한 씨앗”(「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18항)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지칠 줄 모르는 기쁨의 선교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이 여정을 걸어가 목적지에 도착하여 이제 다음과 같이 증언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성인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티모 4,7-8). 수많은 성인 성녀의 모범이 우리를 이끌고 북돋워 줍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프란치스코
<원문 Messaggio Del Santo Padre Francesco per la XXXIX Giornata Mondiale Della Gioventù, “Quanti sperano nel Signore camminano senza stancarsi” (cfr Is 40,31), 2024.8.29., 영어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