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
의 안 집
(INSTRUMENTUM LABORIS)
2012.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
머리말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사도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믿음만이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제자로서 그들의 소명을 완수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서는, 주 예수님께 이렇게 간청하였다. 이 간청은 그들 자신의 한계를 체험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형제들을 용서할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믿음은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현존의 표징들을 드러내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뿌리째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격려해 주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22-24). 마태오 복음사가도 큰일을 이루려면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의심하지 않으면, 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21,21).
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의 믿음이 약하다고 나무라시기도 하였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여쭙자, 스승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20)라고 대답하신다.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풍랑을 가라앉히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8,26) 하시며 꾸짖으신다. 제자들은 하느님과 그분 섭리에 자신을 맡기고 물질적인 것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마태 6,30; 참조: 루카 12,28).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루시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제자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가면서 빵을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아시고, 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너희끼리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마태 16,8-9).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어 사도들이 있는 배로 건너오신 이야기가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신 다음, 베드로 사도의 외람된 청을 들어 주신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 14,28). 처음에 베드로 사도는 아무 어려움 없이 물 위를 걸어 예수님을 향해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4,30-31). 그러고 나서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주님께 엎드려 참다운 신앙 고백을 한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4,33).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많은 신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자세를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개별 교회들에는 약한 믿음 때문에 성사 생활과 신앙 실천에서 멀어지는 신자들이 많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바로 ‘믿음이 없는 세대’(aπιστοι, 마태 17,17; 13,58 참조)에 포함될 정도이다. 또한 초기에는 큰 열정을 보였지만 현대 세계의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여 지치고 두려워하는 개별 교회들이 적지 않다. 베드로 사도처럼, 인간적 능력을 뛰어넘는 도전들과 온갖 유혹과 적대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처럼 신자들에게도 구원은 오직 주 예수님에게서만 온다. 신자들은 개인으로든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든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경험할 수 있다. 오직 주님만이 그들에게 손을 내미시어 신앙 여정에서 안전한 길로 이끄실 수 있다.
이처럼 복음서에 나타난 믿음에 대하여 간략히 성찰해 보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지내기로 결정하시어 믿음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셨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된다. 이 두 행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거행 중에 개최된다. 주 예수님께서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신 베드로 사도에게 하신 말씀은 다시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마태 16,19 참조).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루카 22,32). 우리 모두 앞에 “믿음의 문”(사도 14,27)이 다시 한 번 열릴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날에도 복음화의 목적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이다. 이 과업은 우선 개별 교회들, 곧 교구들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와 관련된다. 신자들은 가정과 공동체와 본당에 신앙의 보화가 전달되도록 마음을 쓰면서, 정기적으로 모여 전례 거행을 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고, 성사들, 특히 성체성사를 거행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증언과 선포, 예비 신자 교육, 교리 교육, 자선 활동을 통하여 이 과업을 수행한다. 복음화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일상 활동이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통상적인 이 복음화 활동은 새로운 열정으로 고무되어야 한다. 언제나 새로우시고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진리를 현대인들에게 전달하려면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찾아야 한다. 순교자들이 보여 준 것처럼 오직 굳건한 믿음만이 많은 중장기 사목 계획들에 활기를 주고, 기존의 조직들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또한 현대인의 요구와 현대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목적 창의력을 북돋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새로운 이 활력은 선교 활동(만민 선교)에도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외딴 지역들만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복음이 전해진 나라들에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선교 활동은 오늘날 그 여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 힘입어, 세례 받았으나 교회와 신앙생활에서 멀어진 형제자매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대상은 그 누구보다 바로 이러한 형제자매들이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 신앙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신자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주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의안집」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루며, 다가오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를 위한 안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서는 「의제 개요」 설문 답변들을 간추린 것으로,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각국 주교회의들, 교황청 부서들, 수도 장상 연합회들이 답변을 보내 왔다. 주교대의원회의 주제에 관한 교회의 성찰에 동참하기를 원한 기타 단체들과 공동체들과 신자들도 답변들을 제출하였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사무처 평의회의 도움과 전문가들의 소중한 기여에 힘입어 전 세계에서 교회가 펼치는 복음화 활동의 많은 희망적인 측면들을 담아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 「의안집」은 교회가 현대의 많은 도전들과 어려움을 고려하면서도 복음화 활동을 적절히 계속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묵상 주제들도 제시하고 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시노드 교부들은 힘을 얻는다. 또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분명한 지도 아래, 기도와 경청의 분위기, 실질적이고 화기애애한 친교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성찰할 채비가 되어 있다. 이 작업은 시노드 교부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친교를 지향하며,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대의원들은 성인들의 전구를 바라고, 특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시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청한다.
선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인류와 교회에 당신 손을 내미시고, 언제든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리고자 하신다. 선택된 이들도 하느님께서 내미신 손을 잡고, 믿음을 가지고 도움을 청하도록 초대받는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하신 예수님의 엄중한 물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마음가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에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되풀이해서 이렇게 기도드린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우리는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가 오늘날 교회의 이러한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을 청한다.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티토 3,6). 또한 우리는 주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하고 거듭 간청드린다.
바티칸에서
2012년 5월 27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사무총장 니콜라 에테로비치 대주교
서 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주교대의원회의 중동 특별 총회를 마치며 선포하신 대로 2012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가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주제로 열린다. 이 회의의 원활한 준비를 위하여 「의제 개요」(Lineamenta)가 마련되었다. 「의제 개요」에 제시된 설문에 대하여, 각국 주교회의들,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교황청 부서들, 수도 장상 연합회에서 답변을 보내 왔다. 주교, 신부, 수도자, 평신도와 교회 운동 단체들도 개별적으로 사무처에 의견을 제출하였다. 그 준비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 성하께서 선택하신 주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온 교회에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이 모든 의견과 고찰은 「의안집」 안에 간추려져 있다.
준 거
2.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는 가톨릭 교회에 특별히 중요한 때에 열린다.사실, 이번 총회가 열리는 시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선포한 「신앙의 해」의 시작과 맞물린다. 1) 따라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이 모든 기념들이 강조하는 회개와 성화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신앙을 재발견하라는 초대를 더 잘 이해하고 거듭 제안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시작하고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신앙의 해에 거듭 강조된 이 초대를 오늘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또 다시 우리에게 권유하신다. 바로 이러한 틀 안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새로운 복음화라는 주제를 논의할 것이다.
3. 그동안 발표된 그 밖의 다양한 문서들은 이 준비 단계만이 아니라 시노드 교부들의 토론을 위해서도 중요한 준거들이다. 오늘날 복음화에 대하여 논의하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직접 분명히 참고하여야 한다. 또한 바오로 6세께서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에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과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um Ineunte)에서 복음화 주제에 관하여 언급하신 것들을 숙고하여야 한다. 이 문서들은 모두 「의제 개요」 설문에 대한 수많은 답변에서 참조 인용하고 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거는 기대
4. 오늘날 교회가 현대의 도전들 앞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복음화 소명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시급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많은 답변들은 강조하였다. 교회는 도전들에 맞서 흩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 모아야 한다. 많은 개별 교회들(교구들, 자치 교회들)과 각국 주교회의들과 여러 동방 가톨릭 교회 시노드들은 이미 지난 수 년 동안, 신앙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그들의 활동을 점검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설문 답변들은 다양한 교회 단체들이 추진하는 수많은 복음화 활동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많은 개별 교회들이 복음화와 그 쇄신에 관한 문서들을 작성하고 사목 계획들을 세워 왔다. 교구, 국가, 대륙 차원에서 복음화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지원하는 사업들을 모색하였다. 또한 이러한 계획들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양성소도 세워졌다.
5. 복음화 활동들이 수적으로 상당히 많아졌지만 그 활동들이 모두 바람직한 결과를 낳은 것만은 아니어서, 이에 관한 긍정적 부정적 측면들이 보고된다. 따라서 이번 세계주교대의원 회의의 소집은, 가톨릭 교회 전체가 이에 대하여 경청하고 식별하고 또 무엇보다도 뜻을 같이하여 효과적인 협의와 선택을 하는 좋은 기회로 여겨진다.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 총회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새로운 힘을 북돋아주는 회의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오늘날 교회의 복음화 역량에 관하여 교회 안에서 제기되는 많은 물음들에 구체적인 응답도 제시하기를 바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복음화 활동을 격려할 뿐만 아니라 의견과 경험을 나누고 복음화 활동의 평가 도구와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가 되기를 고대한다.
정기 총회 주제
6.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를 소집하시며, 새 천년기가 시작된 이때에 교회의 으뜸 과업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상기시켜 주고자 하셨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35주년을 경축하는 2000년 대희년을 교회가 새로운 열정을 가지고 복음화 사명에 임하는 때로 여겼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선임 교황의 뜻을 따라 이 복음화 사명과 그 새로움을 강조하신다.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증언으로 그들을 가르치도록(마태 28,19-20 참조) 사도들은 복음화 사명을 받았다. 교회가 오랜 세기에 걸쳐 충실히 수행해 온 이 사명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는 오늘날 사람들의 자아관과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고 결국 하느님을 믿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7. 이 모든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결과로 혼란이 야기된다. 이 혼란은 삶의 의미에 관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모두 불신하는 자세나 우리 존재의 깊은 진리로 밝혀진 것을 무조건 전적으로는 따르지 않으려는 자세로 표출된다. 신앙에서 멀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수세기 동안 복음이 면면히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던 사회와 문화에서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앙은 점점 더 개인적인 내밀한 영역에 관련된 요소로 여겨지면서, 심지어 많은 그리스도인조차 복음 설교가 사회와 문화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 정작 그들과 그들 공동체의 신앙을 되살리는 일에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 신앙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불꽃과도 같아서 삶의 다른 모든 활동에 자양분이 되고 힘을 주는 것이다. 신앙이 약해지고 또 이에 따라 복음을 증언하는 역량이 약해질 위험은, 안타깝게도, 수세기에 걸쳐 그리스도 신앙이 문화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 온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8.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교황직을 시작하시면서부터, 이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강조하셨다. “전체 교회와 목자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광야에서부터 생명의 장으로, 성자와 나누는 친교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하게 주시는 한 분께 이끌어야 합니다.” 2) 교회는 믿음의 말씀이 이 세상의 새로운 광야에서도 더 널리 울려 퍼지고 더 알아듣기 쉽도록 새로운 도구와 새로운 표현들을 모색할 의무를 절감한다. 믿음의 말씀은 하느님의 참 생명으로 우리를 새로 나게 해 주는 것이다.
9.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 전수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소집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신앙과 증언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북돋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사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성찰하겠다는 결정은 일관된 계획 안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신앙의 해 선포뿐만 아니라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신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교회가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하여 용기와 힘을 얻어, 믿는 기쁨을 재발견하게 해 주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신앙 전수의 열정을 되살리는 데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이는 단순히 복음 전파를 위하여 뭔가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포하는 차원의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선교 활동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며,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자극을 줍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견고해집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새로운 복음화까지
10. 앞서 언급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최근 결정들에 표현되어 있는 교회의 복음화 활동의 쇄신에 관한 계획은 역사가 깊다. 이 계획은 바오로 6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과 사목 직무에 영감을 주었다. 또한, 이 모든 계획의 시작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이는 그 당시 세계의 강렬한 변화와 분열에 직면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혼란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교회는 비관이나 체념이 아니라, 4) 구원의 보편 소명5)이 지닌 새로 태어나는 힘으로 대응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을 바라신다.
11. 이렇듯, 복음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인류의 빛6)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는 그 동안 죄로 가려져 있던 본연의 참된 정체성을 되찾는다.7) 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교회는 현대 세계의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화 사명을 지속하고 재현하고 실현시킬 임무가 있다. 8) 이러한 전망에서, 복음화는 공의회가 내세운 주요 요구들 가운데 하나이다. 공의회는 복음화 사명의 쇄신과 열정을 환기시켰다. 성품 사제인 주교9) 와 신부 10)는 복음화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교회의 이 근본 사명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11) 선교 교령은 복음화가 교회 사명의 으뜸 내용임을 분명히 밝히고, 복음화를 통하여 개별 교회들과 더 일반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복음화는 그저 많은 활동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복음화는 교회의 역동성 안에서 교회가 자신의 목표, 곧 보편적 성화 소명에 응답할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12)
12. 공의회에 뒤이어, 바오로 6세 교황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복음화 의무를 다시 한 번 절실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멀리 내다보셨다. 세례를 받았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따라 살지 않는 수많은 사람, 신앙을 갖고는 있지만 그 신앙의 토대가 되는 지식이 부족한 단순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편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 받은 교육과는 다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였다. 13)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14)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하느님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그들에게 제시하거나 다시 제시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과 언어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15)고 덧붙이셨다.
13.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복음화 의무를 그의 방대한 가르침의 핵심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삼으시어, 새로운 복음화라는 개념으로 종합하시고, 많은 말씀과 글을 통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심화시키셨다. 오늘날, 특히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이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의 당면 과제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교회가 바깥 세상과 맺는 관계와 관련되지만,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교회의 내적 쇄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를테면 복음화되는 교회에서 복음화하는 교회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전에는 그리스도교와 신앙생활이 번성하여 살아 움직이는 신앙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던 나라와 민족들이 이제는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련에 부딪혀 있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세속주의와 무신론의 지속적 만연 때문에 근본적으로 변해 버렸다. 이는 특별히 이른바 제1세계 국가들과 민족들에게 관련되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경제적 번영과 소비주의가, 빈곤과 비참의 비극적인 상황이 공존함에도,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생활을 부추기고 조장한다. …… 또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활력에 찬 수많은 전통과 대중 신심 형태가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들에서도 그 도덕적 정신적 유산은 세속화와 유사 종교의 확산을 포함한 수많은 이유로 뒤집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오로지 새로운 복음화만이 깊고 빛나는 신앙의 성장을 보장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전통을 진정한 자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 분명코 인간 사회를 다시 그리스도화하는 일은 전 세계 도처에서 절박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을 위하여 긴요한 것은 이들 선진 국가나 민족들의 교회 공동체 자체의 구조를 먼저 개선하여 그리스도화하는 일이다.” 16)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새로운 복음화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에 되풀이되어 나오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40주년이던 2005년에 교황청에 보내는 성탄 인사에서, “불연속과 단절의 해석학”에 맞서 “개혁의 해석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개혁의 해석학’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주체인 교회의 연속성을 보존하는 쇄신의 해석학을 말한다. 교회는 시간 안에서 발전하는 주체이지만 지상의 나그네인 하느님 백성으로서 언제나 동일한 하나의 주체로 남아 있다.” 17) 교황 성하께서는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며 이 해가 “공의회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라셨다. “요한 바오로 2세 복자의 말씀대로, 공의회 교부들이 유산으로 남긴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 선출되고 나서 몇 달 뒤에 드렸던 공의회에 관한 말씀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해석학에 따라 읽고 이해한다면, 공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교회의 쇄신에 더욱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18) 따라서, 「의제 개요」 설문에 대한 일부 답변들이 지적한 대로, 앞서 인용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은 선임 교황들과 뜻을 같이한 것으로, 교회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통한 신앙 전수의 주제를 다룰 때 확실한 지침이 될 수 있다. 교회는 현대 세계의 도전들을 인식하면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비롯한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에 굳게 뿌리 내려 있다.
「의안집」의 구조
15.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성찰을 통하여 지난 수 십 년 동안 교회가 해온 일들이 발전되고 심화되기를 바란다. 복음화와 그 쇄신과 관련하여 이미 이루어진 수많은 활동들과 문서들을 보면, 많은 개별 교회들은 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일과 그 방법을 알 수 있는 자리를 기대하고 있다. 많은 답변들에 따르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3차 정기 총회의 주제를 알리고 「의제 개요」에 관하여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오늘날 새로운 복음화의 절박한 요구를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고, 나아가 친교의 분위기에서 현대의 도전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6. 많은 답변들은 교회가 새로운 복음화의 도전에 직면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문제를 숨기지 않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문화의 변화가, 교회 자신, 곧 교회 공동체들과 교회 활동들, 교회의 정체성에도 직접 관련된다는 것을 더 잘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는 식별 과정이 필요하다. 이 식별 과정은 또한 더 큰 용기와 책임감을 가지고 현 상황에 응답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의안집」은 네 장으로 이루어지며, 각 장들은 이러한 성찰과 식별을 돕는 기본적인 내용과 방법들을 마련하는 데에 유용할 것이다.
17. 제1장은 복음화의 핵심을 재발견하는 데에, 곧 인류를 위한 하느님 아버지의 기쁜 소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리스도 신앙 체험에 역점을 두었다. 이 만남으로, 우리는 변화되고 한데 모이며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새 생명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이 새 생명을 이미 현재에,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교회 안에 모일 때 체험하고 있다. 새 생명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우리가 이 세상의 길로 기꺼이 나아가 우리가 받은 선물을 기쁘게 증언하고 선포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제2장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들을 식별하는 것에 관하여 성찰하고 있다. 그런 다음,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이 확산되는 이유들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많은 개별 교회들이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해 본다. 제3장은 그리스도 신앙이 전수되는 근본 자리, 수단, 주체, 활동, 곧 전례와 교리 교육과 자선 활동을 다룬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고 거행하며 실천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신앙 전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제4장은 특히 복음 선포와 신앙 전수에 헌신하는 사목 활동 분야에 대하여 논의한다. 이는 전통적인 사목 분야들과 최근에 크게 발전된 사목 분야들이다. 최근에 부각된 사목 분야들은,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성찰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들과 그들의 신앙생활 방식에 주는 격려와 관심에서 생겨난 것이다.
제1장
예수 그리스도,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복음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18. 그리스도 신앙은 단순히 가르침이나 지혜, 윤리 강령이나 전승이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만남을 갖고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신앙 전수란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인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만남을 위한 조건들을 형성한다는 뜻이다. 모든 복음화의 목표는 이 만남, 곧 내밀하고 개인적인 동시에 공개적이고 공동체적인 이 만남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므로(1요한 4,10 참조), 사랑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다.” 19)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경 말씀대로”(1코린 15,3.4)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과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교회 자체가 이 관계의 은총으로 형성된 것이다.
19. 예수님과의 이 만남은 성부께서 당신 성령을 통하여 인류에게 주시는 위대한 선물이다.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의 작용으로 우리는 이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우리는 바로 이 만남으로 이끌리는 우리 자신을 느낀다. 이 만남은 우리를 이끌면서 또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정체성의 새로운 차원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2베드 1,4 참조). 이 만남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예수님께서 직접 강력히 촉구하신 회개(metanoia)를 불러일으킨다(마르 1,15 참조).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인 신앙은 그분과 관계를 맺고, 특히 성찬례와 하느님 말씀 안에서 그분을 기억하며,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 안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모인 우리 서로를 형제자매로 알아보고, 우리 자신이 이 복음의 증인이자 선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만남으로, 우리는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예언자들이 예고한 대로(예레 3,6이하; 에제 36,24-36 참조) 회개의 행위들을 통하여 달라진 우리 삶을 증언할 수 있게 된다.
20. 이 제1장에서는 복음화의 이 근본적인 차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의제 개요」 설문 답변들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신학적 토대를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력하고 분명하게 밝혀서 교회의 복음화 활동에 올바른 출발점과 힘이 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이 명령에 충실한지를 가늠하는 기회로 여겨진다. 새로운 복음화는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공동체가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그 샘물을 마심으로써 복음화와 증언에 더 맞갖은 자세를 갖추는 은혜로운 기회이기도 하다(2코린 6,2 참조). 사실, 복음화와 증언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모든 것에 앞서는 삶의 자세로서, 끊임없이 정화와 회개를 거듭하는 신앙의 열매이며, 인간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우리 삶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복음 선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21.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시며 최초의 가장 위대한 복음 선포자이셨다.” 20)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예고되고 성경에 약속된 하느님의 복음이 완성되었음을 선포하도록 파견되셨다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서 첫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을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기록된 대로”(마르 1,2)라는 성경 구절과 연결시킨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성경을 봉독하시며 바로 자신의 현존으로 성경 말씀을 실현시키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마태오 복음은 성취된 예언들을 인용하고 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더 깊은 실재를 보여 주려 한 것이다(마태 1,22; 2,15.17.23; 4,14; 8,17; 12,17; 13,35; 21.4 참조). 예수님께서 잡혀 끌려가시던 때에는 이러한 말로 사건을 요약한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26,56). 요한 복음에서, 제자들도 이 관계를 증언한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다음, 필립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요한 1,45).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당신과 성경의 관계, 그리고 이에 대한 성경의 증언에 대하여 여러 번 언급하신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요한 5,39).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요한 5,46).
22. 복음사가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복음이 성경의 온전한 요약이고 연속이며 궁극적인 완성임을 증언하고 있다. 바로 이 연속성 때문에, 예수님의 새로움을 분명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분의 복음화 활동은 그 이전부터 시작된 역사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분의 행위와 말씀은 성경에 비추어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망과 관련하여, 루카 복음에 기록된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다음과 같이 간추려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 24,44).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은 바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신”(루카 24,45) 일이다. 성경이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차지하는 깊은 관계를 고려하여,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예언서와 지혜서를 새롭게 하고 완성하는 복음 선포자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23. 예수님께서 펼치신 복음화의 목적은 당신께서 성부와 성령과 맺는 긴밀한 관계 속으로 사람들을 이끄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설교와 이적들에 담긴 궁극적인 의미, 바로 구원의 선포이다. 구원은 구체적인 치유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대한 의지로 축소될 수 없다. 구원은 자신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아버지의 자애로운 모습 안에서 이를 깨닫도록 모든 이에게 허락된 깊은 체험이다(루카 15장 참조). 그분의 말씀과 행적에 담겨 있는 계시는 예언자들의 말씀과 연관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 앞에서 행하신 이적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그 위대한 예언들에 완전히 부합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병고와 악령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눈먼 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1.2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수많은 예언자들의 표징을 성취하고 그 표징과 밀접히 이어져 있는 당신 행위의 충만한 의미를 알려 준다(특히 이사 29,18; 35,5.6; 42,18; 26,19; 61,1 참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습은 예수님의 복음화 방식의 핵심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차별이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환대하셨다.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 그 다음으로 자캐오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부유한 사람들, 백인대장이나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 부인 같은 외국인을 환대하셨다. 또한 나타나엘 같은 의인들은 물론이고 창녀들,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는 죄인들과도 한 식탁에 앉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헤아리시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1요한 4,10.19 참조)에 대한 믿음을 되살리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선다. 그 사랑은 우리 자신의 공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16).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밝혀 주시면서 교회가 어떻게 복음화하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은 사랑의 모습과 소리를 통하여,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사랑을 믿는 것이다.
24. 예수님의 복음화 활동은 매우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회개의 체험으로 이끈다. 모든 사람은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믿도록 초대 받는다.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친밀한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돌아서고(루카 11,2; 마태 23,9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삶의 행복임을 온전히 자유롭게 깨달을 때, 하느님의 나라는 자라날 것이다(마태 7,21 참조). 복음화와 성화 소명과 회개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또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언제 어디서나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과제는, 복음화와 성화 소명과 회개가 오늘날 우리 공동체들 안에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고, 그 풍요로운 상호작용을 통하여 우리 공동체의 삶이 어떻게 활력을 얻는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교회
25.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받은 은총과 그 열매 덕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데 모여, 그들이 받아들이고 함께 나누는 신앙을 지키고 키우며 더 풍성하게 이 생생한 경험을 계속하게 된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삶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신적 생명에 동참한 다음, 그들 역시 이 복음화 활동을 지속하도록 파견되었다(마르 3,13-15 참조).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루카 9,1.6).
26.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선교 사명에는(마르 16,15 참조) 당신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면서(마태 28,20 참조)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로마 1,1)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따라서 교회의 임무는 복음 전수(traditio Evangelii), 곧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데에 있다.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코린 1,24). 이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할 때에, 살아있고 힘이 있는 말씀, 말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말씀(히브 4,12; 이사 55,11 참조)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곧 사람이 되신 결정적인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야 한다. 21)
예수님처럼 교회에도 이 복음화 사명은 하느님의 활동, 바로 성령의 활동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께 배운 모든 것에서 힘을 받아 증인과 예언자가 된다(사도 1,8; 2,17 참조). 또한 사도들은 확고한 용기를 얻어,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그들을 북돋우는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자신’(parresia) 있게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사도 2,29 참조), 그들의 활동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 전역, 땅끝까지 이르게 하신다.
27. 교회는 처음부터 실천해 온 것을 오늘날에도 계속 실천한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이 사실을 강조하시면서 그 시의성을 상기시켜 주셨다.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열두 제자에게 하신 명령은 비록 방법은 다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 교회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 복음화는 참으로 교회의 고유한 은총이고 소명이며, 교회의 가장 깊은 본성입니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곧, 하느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며, 은총을 전해 주는 통로가 됨은 물론, 죄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영속시키려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22)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면서 예수님의 복음화 사명을 지속하고, 그렇게 할 때에 교회가 하느님 생명을 계속 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성령의 재촉을 받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교회 안에서 다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친교로 이끄신다. 교회가 하는 모든 활동은 결코 닫혀 있지 않다. 이는 언제나 복음화 활동이고, 그러니 만큼 우리 하느님의 삼위일체 모습을 드러내는 활동이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내적 삶도 기록하고 있다. 기도하고,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형제애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는 일이다(사도 2,42-46 참조). 이 모든 일은, 온 교회와 세례 받은 이들의 증언이 되고 그들의 찬미와 회개를 북돋우며 복음의 설교와 선포가 될 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
복음, 모든 이를 위한 선물
28.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복음,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의 생명에 참여하라는 부르심은 모든 이에게 베푸시는 놀라운 선물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회개하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셨을 때 친히 선포하신 것이다. 이를 강조하시고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우선적으로 특히 사회의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당신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셨음을 선포하셨다(루카 4,18 참조). 거부당하고 멸시당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루카 6,20)이라고 선언하신다. 나아가 이 소외된 이들과 어울리심으로써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리 해방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신다(루카 5,30; 15,2 참조).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형제자매로, 친구로 대하시며(루카 7,34 참조), 그들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도우시고, 이렇게 하여 죄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향한 큰 자비를 드러내신다.
29. 하느님 나라가 가져다주는 해방과 구원은 인간 육체와 영혼의 모든 차원에 미친다. 예수님의 복음화 활동에는 두 행위가 따른다. 바로 치유와 용서이다. 많은 치유의 기적들은 비참한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큰 연민을 보여 준다. 하느님 나라에는 더 이상 질병도 고통도 없으며, 처음부터 그분의 사명은 사람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사실도 드러내 준다(묵시 21,4 참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치유는 영적 구원의 표징, 곧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표징이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을 믿음과 회개로, 또 용서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초대하신다(루카 5,24 참조). 믿음이 있을 때 치유는 구원으로 이끈다(루카 18,42 참조). 하느님을 거슬러 맞서는 죄의 상징이자 악의 세력인 마귀에게 시달리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신 행위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마태 12,28)는 표징이다. 곧, 모든 인간을 향한 구원의 선물인 복음이 우리를 변화의 여정으로 이끌어, 지금 우리를 새롭게 하는 하느님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30.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베드로 사도처럼 교회도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복음을 계속 충실하게 선포한다. 베드로 사도는 삶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청하는 불구자에게 그를 치유하는 복음의 선물을 주어 그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자신의 복음화 활동으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고 한 묵시록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이는 그리스도 신앙과 교회 생활이 더 이상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낯선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안에 깊이 스며들어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인류와 그 역사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것이다. 23)
31. 복음화는 인간과 그의 세계와 역사를 바꾸는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회가 하는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의 힘으로(로마 1,16 참조)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함으로써 새로 나게 하는 것이다(로마 6,4 참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례의 새로움과 복음에 따른 삶의 새로움 속에, 곧, 성자께서 성부와 맺는 관계 속에 온전히 들어가, 성령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신앙 전수는 복음화의 목표로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이끄는 것이다(에페 2,18 참조). 이것이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새로움에 대한 체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확신을 더욱 확고히 간직할 수 있다.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임무를 수행할 때 보여 준 그 탁월한 용기와 헌신과 대담함, 통찰력과 대의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성화 활동은 각 대륙마다 독특하고 의미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개별 교회들은 저마다 탁월한 성덕을 지닌 인물들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들의 활동, 특히 그들의 증언 덕분에 복음화 활동이 새로운 힘과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성덕의 모범은 복음화 과업을 실천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데에도 예언적이고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준다. 이는 그들의 저서나 기도, 가르치는 방법과 본보기, 영적 여정, 신앙 입문 과정, 교육 활동과 교육 기관 등으로 남아 있다.
32. 일부 답변들은 이러한 성덕의 모범들이 지닌 힘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경험들을 다시 현대에 맞게 전달하는 어려움도 언급한다. 이따금 이러한 성덕의 모범은 과거에 속할 뿐만 아니라 거의 과거에 매여 있어서 오늘날 더 이상 그 증언의 복음적 성격을 전달할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하여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다양한 교회들이 하느님 복음의 전달자로서 하는 활동과 증언에서 신뢰를 보여 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그 근본적인 원인들을 파악하도록 논의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복음화 의무
33. 모든 사람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권리가 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현대인은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요한 4,10)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모든 이가 품고 있는 구원에 대한 깊은 열망을 이끌어내야 한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4,15 참조). 모든 사람이 지닌, 복음을 들을 이 권리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설교자인 그는 복음의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였기에 복음 선포를 의무로 여긴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모든 사람은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 내놓으셨다.”(에페 5,2 참조)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모든 사람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 곧 그 친밀하고도 변화를 가져다주는 관계로 이끌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24) 다른 이들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할 누군가가 파견되어야 한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이사 52,1).
34. 이제 우리는 교회의 모든 활동이 본질적으로 복음화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은 복음화의 주요 목표, 곧 모든 사람이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와야 할 임무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인 “우리가 사람들에게 단지 지식이나 능력, 기술 소양과 도구만을 전달한다면 너무 부족한 것이다.” 25) 복음화의 원동력은 모든 이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진정한 복음 선포자들은 그들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고자 한다. “교회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복음에 어긋나는 방법이나 강제적인 행동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의 힘으로 사람들이 주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도록 힘썼다.” 26)
35. 사도들의 선교와 이를 이은 초대 교회의 선교는 모든 시대에 복음화의 기본 모델이 된다. 이는 흔히 순교를 특징으로 하는 선교로서, 그리스도교 역사의 초기뿐만 아니라 지난 세기, 심지어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순교는 증언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를 준다. 그들은 권력이나 이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향한 사랑이 지닌 온유하면서도 강한 힘을 세상에 보여 준다. 이는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대로 자기 목숨까지 온전히 바쳐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받게 되는 사랑이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의무에 제약을 가하는 잘못된 신념들이 없지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선교 명령(마태 28,19 참조)을 듣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혼란이 점증하고 있다. 종교 문제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돌아서게 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만 제시하고 그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초대하는 것만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자신의 종교에 더 충실하도록 돕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정의와 자유와 평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공동체 건설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없고 교회에 공식적으로 입교하지 않아도 구원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거나 교회에 입교하도록 촉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27)
36. 비록 비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께서 당신께서만 아시는 길로 베푸시는 은총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28)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알고자 하고 오늘날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그분 교회의 지체가 되는 일은, 인간의 자유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모든 사람의 행복에 대한 관심과 이타적인 사랑을 통하여 이를 충만해지게 한다. 하느님 벗들과 하나 되어 산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은총이고, 이는 생명을 주시는 성자의 살과 피로 맺은 친교에서 비롯된다. 그분께 죄의 용서에 대한 확신을 얻고, 믿음이 낳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다. 교회는 모든 이가 이러한 풍요로움에 참여하여 그들도 충만한 진리와 구원의 수단을 가지고 “하느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로마 8,21) 수 있기를 바란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성자를 주시고 성자께서는 그들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시면서 인간과 소통하시는 분이시다. 신앙을 선포하고 전수하는 교회도 이를 본받는다.
복음화와 교회 쇄신
37. 복음 선포자인 교회는 거듭거듭 자신을 복음화하면서 이 사명을 실천한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 희망을 실천하고 전달하는 공동체, 형제적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는 믿어야 할 것과 희망에 대한 이유 그리고 사랑의 새 계명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인 하느님 백성은 세속에서 살면서 때때로 우상의 유혹을 받고 있기에, 자신을 언제나 주님께 향하게 하는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선포를 듣고, 새롭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주님과 다시 결합하여야 한다. 요약하면, 교회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움과 활력과 힘을 지니려면 언제나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2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려면 교회가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먼저 교회 자신을 복음화하여야 한다는 이 주제를 강조하였다. 30) 이와 관련하여 복음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바오로 6세께서는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신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복음 선포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의 자비로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될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이나 두려움 때문에, 또는 바오로 성인이 말한 것처럼 ‘복음을 부끄러워해서’, 또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31) 많은 설문 답변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특별히 이 주제에 대하여 논의해 줄 것을 제안하였다.
38.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 구성원들의 죄와 같은 어려움에 대처하여야 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어떤 죽은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루카 24,21-24 참조). 이 두 제자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 준다. 곧, 교회가 생명을 주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되는 그리스도나 선포하는 사람을, 나아가 듣는 사람도 모두 죽음 속에 가두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낚는 사도들에 관한 요한 복음사가의 이야기에도 비슷한 경험이 나온다(요한 21,1-14 참조).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제자들의 노력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야 비로소 복음화 활동의 열매인 믿음과 선포의 기쁨을 되찾는다. ‘사람 낚는 어부’(루카 5,10 참조)로 불린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께 다시 한 번 확고히 자신을 의탁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말씀을 믿고 성공적으로 그물을 던질 수 있게 된다.
39. 교회 초기에 그토록 조심스럽게 설명된 일들이 교회사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곤 하였다.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와의 유대가 느슨해지면, 이에 따라 신앙생활도 소홀해지고, 그 유대 자체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하는 경험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는 복음 선포가 무엇보다도 영적인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전수는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교회 공동체의 일이다. 따라서 신앙 전수에서 필요한 것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연구하거나 젊은이들 같은 특정 선포 대상을 선정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 전수는 이러한 영적 활동의 수행 주체와 관련된 것이다.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로써, 외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와 삶 전체를 포함하여 그 내부에서부터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개별 교회들은 오늘날 복음화와 교리 교육의 빈약한 결실이 특히 교회의 영성 문제인지 아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판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그저 단체가 아니라 참다운 공동체, 진정한 형제애, 살아 있는 몸이 될 수 있는 역량에 관한 문제이다.
40. 교회는 복음화의 근본적인 영적 특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맡기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의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주님의 자녀를 낳아 신앙을 전달하고 자녀를 살찌우는 사랑을 가르치는 어머니인 교회(Ecclesia Mater)로서 자신의 소명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는 하느님의 이 계시를 선포하고 증언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기 백성들을 한데 모아야 하는 자신의 책무를 이행한다. 이로써 교부들이 교회를 두고 한 말이라고 여기는 다음과 같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질 수 있다. “너의 천막 터를 넓혀라. 네 장막의 휘장을 아낌없이 펼쳐라. 네 천막 줄을 길게 늘이고 말뚝을 단단히 박아라. 네가 좌우로 퍼져 나가고 네 후손들이 뭇 나라를 차지하여 황폐한 성읍들에 자리 잡을 것이다”(이사 54,2.3).
제2장
새로운 복음화의 시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41.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께 받은 선교 사명(마르 16,15 참조)은 시간이 흐르면서 장소와 상황과 역사적 계기에 따라 늘 새로운 형태와 양식을 지녀왔다. 우리 시대에 복음 선포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교회에 맡겨진 그 임무는 처음과 동일하다. 그 사명이 바뀌지 않았기에 오늘날 더욱 우리가 사도들과 첫 제자들이 지녔던 열정과 용기를 우리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사도들이 위층 방의 문을 열고 나와 복음 선포자가 되도록 해 주신(사도 2,1-4 참조) 바로 그 성령께서 오늘날의 교회를 이끌고 계시며 교회가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새로이 선포하도록 재촉하신다.
4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가끔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전혀 새로운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32) 는 점을 상기시킨다. 공의회 교부들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화적 변화를 선견지명을 가지고 내다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신앙인들에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하여 새롭고도 어려운 지금의 상황 속에서 우리 신앙의 이유를 설명하려면 복음 선포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43.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목격해 온 사회적 변화들은 먼 과거에 뿌리를 둔 복합적인 원인들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변화의 긍정적 측면은 누구나 알 수 있고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이 덕분에 인류 문화가 발전하고 많은 분야에서 지식이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공동체 생활의 가치와 몇 가지 근본 측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는 사람들의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편으로는 인류가 이러한 변화들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는 혜택을 받았고, 교회는 자신이 지닌 희망에 대해 증언하도록 더욱 큰 자극을 받았지만(1베드 3,15 참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함에 대한 감각 상실이라는 걱정스러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그리고 출생과 죽음, 가정생활, 자연 도덕률과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에 대한 공통 이해 등 이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였던 원칙들에도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일종의 해방으로 반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인간 스스로 자기 본성과 운명의 유일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만물의 근본이 되는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면 언제나 내적으로 황폐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내 깨닫게 되었습니다.” 33)
44. 그리스도인 생활 속에서도 겪는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서 교회는 자신이 지닌 희망을 말할 수 있도록(1베드 3,15 참조) 더욱 힘을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라는 용어는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세속화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이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이 교회 안에서 발전되었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으며, 그 의미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는 처음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이어 식별의 작업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오늘날 교회를 고무시키는 힘으로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복음화’의 필요성
45. ‘새로운 복음화’란 무엇인가?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에게 한 첫 연설에서 이 용어를 널리 알리시고 이렇게 정의하셨다. “500년에 걸친 복음화를 기념하는 일은, 여러분이 주교로서 자기 사제들과 신자들과 함께 복음화를 사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 충만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분명 이 사명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 복음화를 위한 사명입니다. 곧 그 열정과 방식, 그 표현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34) 그러고 나서 교황님은 유럽 교회에도 그와 비슷한 호소를 하셨다. “[1991년 유럽 주교대의원회의] 제1차 특별 총회는 ‘오늘날 유럽은 단순히 이전의 그리스도교 유산에만 호소해서는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메시지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며 ‘새로운 복음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35)
46. 그 시작 단계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의 영적 선교적 소명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으려면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요청에 답하고 있다. 오늘날 급격한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그들 안에서부터 생기를 북돋아주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다시금 뿌리를 탄탄히 내리기 위한 힘과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그들을 내맡겨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그들이 누리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친교라는 선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맛보아야 하고, 또한 그들이 지닌 가장 귀한 선물로서 이 똑같은 경험을 다른 이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47. 「의제 개요」의 답변들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이러한 판단과 완전히 일치했다. “새로운 복음화는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에 대하여, 놀랍게도 많은 답변들이 같은 의견을 제시하였다. 곧,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생겨난 새로운 문화적 상황들 속에서 신앙과 그 선포라는 교회의 공동체적 경험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북반부와 남반부, 서양과 동양, 곧 수천 년의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닌 나라들은 물론이고 복음화된 지 채 몇 백 년 되지 않은 나라들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관례적으로 ‘세계화’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여러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이 융합되면서, 전통과 제도들이 약화되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사회적 문화적 유대가 급격히 깨졌으며, 가치관을 나누고 인생의 의미와 진리에 대한 물음에 답할 능력 또한 잃었다. 그 결과 두드러지게 문화의 일치가 깨지고, 신앙을 충실히 따르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은 가치들에 따라 사는 문화의 역량이 상실되었다.
48. 이러한 부정적 상황이 신앙의 경험과 여러 형태의 교회 생활에 끼친 영향들이 모든 답변 안에 거의 비슷하게 서술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 공동체들의 신앙 약화, 교도권의 권위에 대한 존중 감소, 교회 소속에 대한 개인 편의적 인식, 신앙생활의 쇠퇴, 새로운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 등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거의 모든 주교회의의 답변에서 찾아볼 수 있고, 교회 전체가 이러한 문화적 풍토에 대처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49.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복음화는 교회가 자신에게 하는 호소이며 요청이다. 이를 통하여 교회는 자신의 영적 힘을 모으고, 이 새로운 문화적 풍토 안에서 분명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맡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다. 아울러 교회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알아보고, 자신의 신앙과 복음화의 사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변화된 문화적 상황에 관련되고, 또 교회가 신앙을 실천하고 전수하기 위하여 힘과 의지, 생기와 능력을 되찾을 필요가 있음을 가리킨다. 답변들은 이러한 호소가 여러 지역 교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 주면서도, 거기에는 우려 어린 목소리가 배어 있다. 이는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이러한 문화적 풍토가 교회 내부에도 가져온 위기의 파장과 도전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논의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의 심각성을 시의적절하고도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세속화 현상을 다루면서 그것이 그리스도교에 끼친 긍정적 36) 부정적 영향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제기하고 있는 도전들을 살펴볼 것이다.
50. 그러나 모든 징후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 많은 교회들에게 쇄신을 위한 노력은 희망의 표징이며 성령의 은사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대부분이 교회 단체와 운동들이고 일부는 신학 학회나 문화 기구들로, 이 문화 속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참으로 실천할 수 있음을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개별 교회들은 이러한 경험들을, 이에 신선함과 열정을 불어넣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을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개별 교회는 젊은이들의 역량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젊은이들의 역량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도록 권유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경험들은 아직 시작 단계이기에 장점만이 아니라 한계도 있으므로, 이러한 경험들이 커 가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분야들
51. 꼭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새로운 복음화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오늘날 신앙을 실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살펴보도록 교회에 재촉하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복음화는 이제 식별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의 역사 안에서 생겨난 새로운 분야들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 분야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체험하는 자리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분야들이 처음으로 기술되었고, 37) 이는 「의제 개요」에도 나와 있으며 설문 답변들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되고 있다. 이 분야들은 문화, 사회, 경제, 정치와 종교이다.
52.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가장 우선시되는 분야가 문화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폭넓게 다루었다. 많은 답변은 세속화 추세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리로 문화 분야를 꼽고 있다. 특히 서구 사회에 널리 퍼진 세속화는 그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회적 지적 운동들과 사건들의 산물이다. 세속화는 오늘날 우리 문화들 안에서 해방의 현실적 표징으로, 이 세상의 삶과 인류 전체의 삶을 초월과는 무관하게 생각하는 가능성의 표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도 일부 반(反)그리스도교적, 반종교적, 반성직주의적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속화는 더 이상 하느님, 종교, 그리스도교를 공공연히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형태는 띠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많은 답변들이 보여 주듯이, 세속화는 나직한 어조를 취하여, 이러한 문화적 형태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게 했다. 또한 이 문화 형태가 하느님께서 실제로 완전히 부재하시거나 부분적으로 존재하시고, 그분의 존재 자체도 인간의 의식에 달려 있다는 사고방식을 키우게 했다.
53. 이 나직한 목소리가 세속화에 한층 매력을 실어 주면서, 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의 삶 안에도 세속화가 스며들었다. 이제 세속화는 신자들에게 외적인 위협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젖어든 내면의 적이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습관적 행동에서 삶을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외쳤던 ‘신의 죽음’은 무익하고 쾌락주의적이며 소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낳았고, 이는 실제로 삶과 책임을 지극히 피상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신앙이 그 근본 요소들마저 잃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속화의 분위기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면서 진리의 존재를 단언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하느님에 관한 질문이 인간의 자아 성찰에서 배제되고 있다. 사람들이 종교적 욕구를 채우고자 개인주의적 영성이나 새로운 이교의 형태에 빠져, 상대주의의 풍토가 만연하기에 이르렀다.
54.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세속화에 대응하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세속(saeculum)은 신앙인들과 비신앙인들이 더불어 살고 공통된 것을, 곧 인간성을 나누는 곳이다. 바로 이 인간적 요소는 신앙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이기에 복음화의 탁월한 자리가 될 수 있다. 나자렛의 예수님의 온전한 인간 본성 안에 충만한 신성이 머무르고 있다(콜로 2,9 참조). 나자렛의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여 인간성을 정화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화에 물들어 살고 있지만 진정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계속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진리를 찾는 이들과의 만남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진리를 찾는 이들이 아직 신앙의 선물을 지니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내적 투쟁은 신앙을 실천하고 증언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우리에게 실질적인 자극이 된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참모습을 만나 뵐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답변들은 ‘이민족의 뜰’이라는 계획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55. 첫 번째 분야인 문화 다음으로 사회 분야가 있다. 대규모 이주 현상이 빚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화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문화들이 서로 만나 뒤섞인다. 삶의 기초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삶의 의미를 알도록 해 준 유대마저 깨지고 있다. 세속화의 확산과 맞물려, 이러한 과정은 문화적으로 극심하게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하여, 종교적 전통을 포함하여 주요 전통들이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이 사회 분야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현상과 관련된다. 이는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세심한 식별이 요구된다. 이 현상을 순전히 경제와 생산과 연관된 불가피한 것으로만 보면, 부정적인 현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성장의 계기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인류는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함께 발전하는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키우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56. 「의제 개요」의 답변들에서 언급한 세 번째 분야는, 이주 문제와 관련되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다. 많은 경우 이주 현상의 직접적 원인으로 경제 분야를 들 수 있다. 국내는 물론 국가들 사이에 야기되는 불평등에 따라 이주와 결부되어 발생되는 긴장 관계와 폭력 형태 때문이다. 개발 도상국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 보내온 답변들은 빈부의 차이가 현격히 증가했음을 보여 주었다. 교황의 교도권은 자원의 접근과 분배에서는 물론이고 피조물에 끼친 손해로 남반부와 북반부 사이에 불균형이 커지고 있음을 계속 지적해 왔다. 오늘날 계속되는 경제 위기는 천연 자원은 물론이고 인적 자원의 사용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가난이라는 복음적 이상을 실천하도록 초대 받은 개별 교회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중 매체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문제라 하더라도, 교회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구체적인 활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