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6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4-18 09: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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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 및 이주사목위원장 담화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2007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 교회는 1914년 이후 매년 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주일에 “세계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2000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1월 마지막 주일에 지내는 ‘해외 원조 주일’ 전(前) 주일에 ‘이민의 날’을 지내기로 결정하고 지내왔으나, 2005년부터 이주사목위원회 의견에 따라 5월 1일(주일인 경우)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기로 날짜를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올해 이민의 날을 4월 29일에 지낸다.

이민 가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가오는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하여, 모든 가정의 모범인 나자렛의 성가정을 바라보며,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민 가정의 상황을 생각해 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요셉이 헤로데 임금의 박해를 피해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야만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마태 2,13-15 참조). 1952년에 존경하올 저의 선임자이신 하느님의 종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복음서의 이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포악한 군주의 횡포를 피하여 이집트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예수님과 마리아와 요셉의 나자렛 성가정은 모든 시대 모든 곳의 이민과 순례자, 박해나 빈곤 때문에 그들의 고향, 사랑하는 부모와 친지, 이웃과 가까운 벗들을 떠나 낯선 땅으로 떠나야만 하는 다양한 처지에 놓인 모든 난민의 전형이며 보호자입니다.”(교황령「피난 가정」[Exsul Familia Nazarethana], AAS 44, 1952년, 649면).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만 했던 나자렛의 성가정이 겪은 역경에서, 우리는 모든 이민들, 특히 난민, 망명자, 추방자, 실향민, 박해받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이민, 난민들과 실향민들의 고충과 곤욕, 결핍과 허약함 등, 모든 이민 가정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대번에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민으로 일그러지고 약해졌지만, 나자렛 성가정은 모든 가정의 한가운데에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세계 이민의 날 주제인 ‘이민 가정’은 1980년, 1986년, 1993년의 주제들과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이는 이민 개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도 지원하는 교회의 책임까지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가정은 생명 문화의 터전이자 원천이며, 가치관을 완성시키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민 가정은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다시 함께 모여 살기 힘든 상황에서 종종 가족의 유대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애정이 싹틉니다. 어떤 이민들은 격리와 고독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과거와 자신의 의무를 잊어버립니다. 이민 가정이 실제로 그 사회에 속하고, 참여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2003년 7월 1일에 발효된 ‘모든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의 취지는 남녀 이주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정을 보호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이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현상이 된 이민의 영역에서도 가정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이민과 난민과 그 가족들의 권리 보호에 그 목표를 두는 국제법의 비준을 촉구합니다. 또한 여러 기관과 단체를 통하여, 점점 더 절실해지는 이민들의 옹호 활동을 합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교회는 이민들의 상담 센터, 이민들의 쉼터, 이민과 가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무소들을 열었으며, 이 분야에서 점점 더 늘어가는 요구에 응답하는 여러 활동들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민 가정의 통합을 위해 이미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민 1세대는 ‘방어기제’와 연관된 어려움을 심하게 겪으며, 이는 이민 2세대 젊은이들의 더 나은 발전을 방해할 위험을 내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들의 통합을 돕기 위한 입법적, 사법적, 사회적 중재가 더욱 더 필요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더욱 유망한 직업적 전망을 염두에 두고,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찾아서 모국을 떠나는 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인신매매나 매춘의 희생자가 되고 마는 여성의 수도 적지 않습니다. 가족의 재결합에 있어서, 사회복지사, 특히 여자 수도자들은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될 중재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에 우리는 마땅히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민 가정들의 융화와 관련하여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난민 가정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시라고 요청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그들의 처지는 과거에 비해 더욱 악화된 것 같아 보입니다. 특별히 가족의 재결합에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난민 수용소에서 난민들은 물자 보급의 어려움과 비참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에 관련하여 성격상의 문제를 겪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생존기제로 성적 착취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세심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목적 배려로 존중의 문화를 회복하고 또한 진정한 사랑의 가치도 재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원도 포함하여야 합니다. 내적으로 파괴된 이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가족들의 권리와 존엄을 보장하고 그들의 필요에 따라 주거 시설을 보장하도록 모든 것이 강구되어야 합니다. 난민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사회에 대해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기르고, 모든 이를 위한 ‘공동의 가족’이 될 통합된 공동체 건설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안을 능동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 요구됩니다.

  이민들 가운데에는 특별히 고려되어야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집을 떠나 멀리 외국으로 와, 충분한 언어 지식도 없이, 때로는 친구도 없이, 생활하기에 부족한 장학금만으로 살아가는 유학생들입니다. 그들이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교회는 지원해줄 가족이 없는 젊은 학생들의 고생을 덜어주고자 교회 기관을 통하여 도와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이는 기꺼이 그들을 환대하며 서로 잘 알고 지내기 쉬운 가족들과 연결시켜 줌으로써 이 학생들이 자신을 받아준 도시 안에 통합되도록 하는 데 실로 도움이 됩니다. 제가 다른 경우에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외국인 유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은 “사목 활동의 중요한 분야로서 ... 실제로 학업을 위해 모국을 떠난 젊은이들은 많은 문제들에 부딪치게 되며 특히 정체성의 위기라는 위험에 봉착하게 됩니다”(로세르바토레 로마노, 2005년 12월 15일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계 이민의 날이 교회 공동체와 여론을 통하여 이민 가정들의 긍정적인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필요와 문제들에 관한 인식을 높여주는 유익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저는 거대한 이민 현상에 직접 관여하는 이들과 그리고 유동 인구에게 봉사하는 데에 사목적 역량을 발휘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우선적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주도록 재촉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저는 여러분 각자를 위하여 하느님의 도움을 간청하며, 애정 어린 맘으로 모든 이에게 사도로서 특별한 축복을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06년 10월 1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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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2007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하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93차 세계 이민의 날입니다.
  최근 들어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광범위하고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민 현상입니다. 이제 이민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명에 이르고 이 문제와 관련을 맺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우리나라는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주민의 수는 약 100만 명에 이르고, 국제결혼 가정이 대략 16만을 헤아립니다.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서 이미 취학중인 어린이는 2006년 교육부 통계로 8천 명에 이릅니다. 지금 농촌 남자 10명 중 4명은 외국인과 결혼하고 있으며, 농어촌 지역에서는 이미 3분의 1정도의 어린이들이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있고, 그 수는 앞으로 급속도로 늘어날 전망이어서, 2010년이면 10만 명, 2020년이면 17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현실은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사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준비는 정부나 국민 모두 너무나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적절한 대책이나 체계적인 준비 없이 우선 급한 대로 외국 노동력을 들여오거나 방치하다 보니, 그들이 단순한 노동력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니는 존엄성과 권리를 향유해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였습니다. 외국인 10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을 당한 이번의 참사는 화재 특유의 긴박성과 감각에 바로 와 닿는 측면 때문에 유난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뿐,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당하는 인권 유린의 사례와 범위는 넓고도 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기업체와 감독관청이 당장의 경제적 득실만을 생각해서 짧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보유하게 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며, 그만큼 경험도 체계도 거대한 흐름에 걸맞는 대책도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온 것입니다.

  이에 비해 서양 여러 나라들은 이민과 관련한 역사가 길어서 그동안 경험이 축적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노력해 온 시간도 길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과 가치관이 사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하는 자세에도 상당한 관용과 형제애의 정신이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요즈음에 와서 서양 여러 나라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이나 외국 출신 거주자들과 관련한 어려움이 여러 형태의 사회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이들이 한 사회에서 처음부터 소외되지 않고 다른 모든 국민과 하나가 되어 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민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교회는 이민들과 난민들에 대해 특별하고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주로 이민 사목 수도회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하게 하였고, 1914년에 발표된 「이민 문제 연구」라는 교령을 위시해서 제2차 바타칸 공의회를 거쳐 2004년 5월 3일에 반포된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회에 이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절한 사목적 대응책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스칼라브리니 주교(1839-1905)가 이미 1887년에 이민들과 그에 따른 문제만을 전담하기 위한 수도회를 설립했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수백만 명의 인구가 주로 미국을 향해 떠났고, 그들의 신앙생활과 인간으로서의 삶에 따르는 온갖 문제들을 함께 풀어 나갈 사람들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르러 이탈리아가 이민을 보내는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그 위상이 바뀜에 따라, 과거에 고향을 떠나 이민으로서 겪었던 아픔들을 감안한 정책을 세워 실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외국에서 들어오면 그 가족도 함께 입국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그 좋은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바탕이 되어 국제 사회는 이민에 따른 인간적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 2003년 7월 1일에는 <모든 이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 협약>이 발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협약은 당시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그 승인을 강력히 권고하신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여러 지역으로 강제 혹은 자의에 의해 정치적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고국을 떠난 동포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경제적 혹은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나라를 떠나는 이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더 이상 떠나는 나라라기보다 외국인이 들어오는 나라로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가 외국에서 받은 설움과 고통을 이제는 자칫 우리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탈출 22,20)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이제 우리를 향해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속 깊이 듣는 우리는 우리 민족으로서 처음 맞는 대량 이민 현상을 앞두고, 외국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데 관해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마태 5,13-16 참조) 신앙인의 사명을 우리는 오늘날 어느 영역에서 보다도 대량 이민과 관련된 분야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마태 8,20) 나그네이셨던”(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5항)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언제나 잠시 머무는 사람이며, 어디에 있든지 나그네”(위 문헌 16항)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 일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점점 국경이 의미를 상실해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주라는 대양 속에서 지구라는 아주 작은 배를 탄 공동 운명체로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가고 있는 이 때,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물어 버리신”(에페 2,14) 주님의 뜻이 우리의 마음 씀과 노력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7년 4월 29일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  병  호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