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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 2019-09-25 10: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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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보급과 교육, 연구에서 천주교의 역할

한글 보급과 교육, 연구에서 천주교의 역할

(경향잡지 2019년 10월호 경향 돋보기 기고문)

 

글_염철호 요한/ 부산교구 사제로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로 있다. 로마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와 한글

초기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은 처음부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교리를 익힐 수 있도록 어려운 한자보다 한글 사용을 선호했다. 그래서 「교요서론」, 「주교요지」와 같은 한글 교리서들이 필사되어 활용되었고, 「성경직해」, 「성경광익」, 「성경직해광익」과 같은 복음 묵상집들이 한글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또한 한글을 모르는 이들이 교리서를 읽을 수 있도록 공소 회장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한글 교육도 실시했다. 이런 노력은 많은 중산층과 평민, 더 나아가 노비에 이르기까지 천주교의 교리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을 뿐 아니라 한글 보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한글 자체의 연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들은 정작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에 파견되었던 외국 선교사들이었다. 

19세기 초 머나먼 땅으로 선교를 떠나온 선교사들은 처음 접하는 외국어였던 한국어를 습득하려고, 또 후임들이 좀 더 쉽게 한국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국어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기에 선교사들은 탄탄한 언어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어 학습 교재와 사전을 출간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였던 달레 신부가 「조선교회사」(1874년)에서 조선어 문법을 요약해 둔 ‘조선어’에 대한 장들과 선교사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모아 탄생한 리델의 「한어문전」(1881년), 그리고 그와 함께 사용하려고 조금 앞서 편찬된 한국어 최초의 서양어 사전이라 불리는 「한불자전」(1880년)이 있다. 

1909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독일 베네딕도회 선교사들도 여러 권의 한국어 문법책을 발간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에카르트 신부는 독일에서 이미 「조선어 교제 문전」(1923년)이라는 문법 서적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 서문에서 그는 한국어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남겼다. “만일 어느 민족의 문명이 그 언어와 문자로 평가되어야 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한민족은 모든 민족 가운데 첫 번째며 최상의 민족 자리를 차지한다.” 

당시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조선어학회’의 이극로는 이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한 조선의 독립 투쟁」(1927년)에서 인용한 바 있다. “만일 어느 민족의 문화 수준을 언어와 문자에 따라 측정한다면, 조선은 지구상에서 최상의 문화 민족일 것이다. 한글은 수천 개에 달하는 형용사와 동사를 가진, 표현력이 풍부한 문자이며, 자연에 대한 조선인의 자세한 관찰과 풍부한 정신적 자산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언어이다.”

 

맞춤법에 대한 관심

한국 천주교회의 한국어 연구는 자연스레 맞춤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지역마다 여러 방언으로 말미암아 표기가 달라 선교 활동에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선교사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한국어에는 어형 변화가 너무 많아 모두 배우기가 어렵다.’고 투덜대는 내용도 담겨 있다. 표기법에 대한 선교사들의 관심과 노력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최정복은 「가톨릭청년」(1932년)에서 맞춤법을 통일하려는 노력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까지 각 사람이 저마다 생각나는 대로 적고 써 내려왔으므로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다 달라 도무지 불규칙하였다. 오직 우리 천주교회만이 그러한 도탄 중에서도 최근 백여 년 동안을 철두철미하게 성서로, 온갖 서적으로 한글을 보전해 와서 오늘이 있게 한 큰 공로자이다. 우리로서 제 칭찬을 제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이 증명하는 것이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최정복의 말에서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가 한글 연구와 보급, 그리고 맞춤법 통일 과정에 매우 깊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 천주교회는 1933년 10월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기 15일 전 이미 주교회의를 통해 새로 발표될 맞춤법 통일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모든 교회 출판의 원칙으로 삼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리고 1934년 1월에 주재용 신부는 즉시 새 통일안의 원칙에 따라 교리서를 교정 출간했다.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 와 「Viribus Unitis」

한국 천주교회가 한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맞춤법 통일안을 마련하는 데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 좀 더 심도 있게 볼 수 있는 교회 문서가 있는데, 바로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1932년 발행)와 「Viribus Unitis(일치된 힘으로)」 2-4호(1934년)이다. 

먼저,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는 조선 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1931년 열린 한국의 첫 지역 공의회의 결정 사항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자 작성한 것으로, 이 문건은 각 선교지에서 이루어지는 선교 활동이 한국인의 문화와 언어에 잘 맞게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추진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라틴어로 되어 있어 잘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한글 보급에 대한 관심도 담겨 있다. 여기서 전교 회장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에게 교리뿐만 아니라 언문을 가르치고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교들은 바로 이 지도서에서 출판물 출간에 반드시 새 철자법, 곧 한글 맞춤법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Viribus Unitis」는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가 공포된 뒤 그 지도서에 따라 ‘가톨릭 액션(활동)’을 증진시키고, 관련 규정을 한국의 모든 선교사에게 전달하고자 1933년 11월 1일부터 3개월 주기로 출간된 정기 간행물이다. 

라틴어로 작성된 이 간행물 안에는 주재용 신부가 적은 “한국 교회가 최근 받아들인 맞춤법에 관하여”와 그 저자가 확실하지 않은 “한글 맞춤법의 여러 실질적 개념들에 관하여”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이 문서들은 새 맞춤법을 모든 교구의 사목자들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작성한 것이다. 주교들은 이 문서를 통해 한민족에게 민족어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회 전체 차원에서 새롭게 환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당시 맞춤법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학자들 사이에 존재하던 여러 논란도 소개하였다. 이와 관련된 교회의 입장이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일본의 동화 정책을 위해 한국어를 일본어 보급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주교회의는 분명하게 단언한다. 

“이 움직임은 결정권을 결여한 이들의 비참한 희생으로,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정치적 속임수에 당한 것이다. 이 속임수란 바로 한민족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국어 고유의 문자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지배자의 새로운 정신을 이식하기 위해 새로운 문자로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다(이것 또한 역사를 모르고, 또 이 움직임의 의도를 모르는 이들의 견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 문화와 언어, 특히 한글을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맞춤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1934년 이후에 출간된 「가톨릭청년」과 「경향잡지」부터는 새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출간되었으며, 그에 앞서 「가톨릭청년」은 이미 창간호(1933년 6월)부터 한글 맞춤법에 관하여 연재하며 맞춤법 보급에 힘쓰는 모습 또한 보여 왔다. 

 

한국 천주교회의 한글 사랑

사실, 한국 천주교회의 한글 사랑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자들도 부족했지만 주교회의 자료들이 라틴어로 작성되었기에 접근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는 몇 가지 자료만을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가톨릭 선교사들이 한국의 문화를 미개하게 보면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비해 못하다고 생각했다거나, 또는 한국인들의 교육에 부정적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 천주교 공용 지도서」와 「Viribus Unitis」는 선교사들이 한국 문화와 언어에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음을, 더 나아가 후대의 한국어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잘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일제 강점기 한국 천주교회, 특히 선교사들이 우리 민족과 문화, 언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될 당시 주교회의 출판 위원장이었던 서울대목구 라리보, 곧 원형근 주교가 「Viribus Unitis」 3호에 담은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15일 전 천주교회의 결정이 아주 어렵사리 이루어졌다는 것은 특별히 유익한 일이었다. 어떤 이도 양육의 공로가 지니는 가치가 출산의 공로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 교회는 그들이 한국과 한국어를 참으로 사랑할 때마다, 앞서 언급한 양육의 공로를 통해 애덕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선임자가 자신의 최대한의 공로를 증진시킨 바 있다. 

사실, 프랑스 선교사들이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자기 어머니, 곧 한국인들 자신으로부터 비방과 망각의 길 위에 버려지고 무시 받던 고아와 같은 한국어를 집대성하여 발전시켰다는 점을 모르거나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